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 같지 않은가?(욥기 7,1).
구약에서 욥은 처절하게 고통을 받은
대표적인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고통을 통해서 하느님을 뵙는
특은을 입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를 통해 우리는 부정적이며 나쁜 것을
어떻게 긍정적이며 좋은 것으로 바꾸며
삶을 전환 할 수 있는 지를 잘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받았던 상처를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극복해 나가며
그것을 선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말에 blessure(블레쉬르)는 상처라는 뜻과 함께
‘복’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상처는 큰 복입니다.
다만 상처를 어떻게 대하며, 치유하고,
극복하는가에 따라 다를 뿐입니다.
상처는 우리를 더 좋은 삶으로 나가도록 만드는
디딤돌이나 뜀틀이 될 수 있습니다.
상처가 복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상처를 발견하고 그것을 끌어안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곧 땅 속에 묻힌 보물을 얻는 셈입니다.
그러나 상처를 계속해서 묻어 두거나 외면할 때,
그 상처는 없어지지도 잊혀지지도 않습니다.
상처는 겉으로 아무리 잘 싸매거나 덮거나 해도
‘아픈 발가락’으로 계속 남아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것은 영혼 한 쪽에 빈 구석처럼 남게 됩니다.
언제라도 그것이 건드려지면, 펄쩍 뛸 만큼 아프고,
곧 격정으로 터져 나옵니다.
이른바 본능적으로
방어기제가 작용하며 반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상처를 스스로 직면하지 못하도록
자신을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기피하는 이유는
바로 상처 속에 비밀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영혼은 의식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지난 날의 상처를 잊어버리고자 합니다.
특히, 어린 시절에 받았던 상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으려고 작정하기 때문에, 웬만큼 집중해서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처는 종종 격정으로 나타나는데
우리가 세상이나 심지어 하느님까지도
우리의 원수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게 만드는 경우가
번번히 생깁니다.
우리의 상처는 정서나 감정의 중심을 깨기가 십상이어서,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는 영 딴 판으로 반응하며
행동하게 만들기를 잘합니다.
그러니까 상처를 탓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탓할 필요도 없고, 더욱이 탓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붙들고 씨름하거나 싸우지도 말고
숨기려 들지도 말 것이며, 그것이 마치 옳은 양 합리화내지
정당화시키는 일은 더욱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우리의 상처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자기 발견의 길을 꾸준히 가면서
우리의 상처 때문에 나타나는 반작용을 관찰하고
그와 관련된 감정이나 정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될 때,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이때는 특히 전문가와의 상담이나 영성지도가 도움이 되는 데
혼자서 기도를 한다거나,
신뢰할 만한 사람과 함께 경험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습니다.
상처가 복이 되는 것은 바로 상처 입은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게 될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어릴 적에 입은 상처를 생각하거나
기억을 더듬어 되살려 낼 때,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입은 상처를 이야기하면서 되살리고 되짚어 볼 때,
그 상처에 대한 기억이 선명해지면서
그것이 오늘 나의 격정의 원인이요,
반작용이나 방어기제의 뿌리가 된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겁니다.
각자의 어두운 면은
상처받은 본성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상처를 확인하고 나면 표피적으로
덧없는 위로를 구하려 하던 모습이 부끄러워지고
오히려 영혼의 잠재력을 살리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두려움이나 자신의 상처를 거리낌 없이 기억하고
겉으로 끌어내고 서슴없이 이야기하게 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하듯이 담담하게 할 수 있게 됩니다.
이야기는 언제라도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치유하는 힘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난생 처음 받은 상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환경이 아무리 좋고, 관계가 좋고,
부모 형제 같은 가족의 사랑이 아주 컸던
좋은 배경을 가지고 자란 사람들도
어린 시절에 상처를 입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배신감이나 소외감 또는 고립감이나
버림받은 느낌 같은 것이 우리 모두에게 상처를 입혔습니다.
함께 놀러 가기로 약속했던 아빠가
그 약속을 안 지키거나 못 지킬 때,
엄마가 동생하고만 재미있게 지내며
동생만 보살피면서 자신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느낄 때,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다가갔는데,
철저하게 외면당하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상처를 받는 겁니다.
상처 받은 것 가운데 내내 잊혀지지 않고
두고두고 생각나는 것도 있고
까마득하게 잊혀진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기억의 창고에 깊숙이 쳐 박혀서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도
남의 이야기를 듣다가 연상작용의 고리가 걸리면,
얽힌 실타래가 풀리듯이 이야기가 풀려 나옵니다.
그래서 ‘난생 처음 받은 상처’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상처와 격정을 확인하고 그것을 치유받게 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되는 겁니다.
당신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문으로 겨우 들었었는데,
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욥기 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