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Supper - JUANES,Juan de.
1560. Panel 116x191cm Museo del Prado,Madrid.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대축일
Solemnity of the Body & Blood of Jesus
Corpus Domini
(celebrazione mobile) - Solennit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체성사를 특별히 기념하고 그 신비를 묵상하는 날이다.
이날은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첫 목요일이나 주일에 지내도록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일에 지내고 있다.
이 축일은 1264년 교황 우르바노 4세 때부터 공식적으로 지내기 시작하였으며,
성체 축일과 성혈 축일을 따로 지내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부터 함께 기념하고 있다.
오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의 신비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성찬의 식탁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있습니다.
이 미사 동안,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시는 사랑에 감사하며 우리 모두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도록 다짐합시다.
(가톨릭굿뉴스홈에서)
The Last Supper - LEONARDo da Vinci.
1498. Mixed technique,460x880cm Convent of Santa Maria delle Grazie,Milan.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1247년 리에즈에서 몽 꼬르니용(Mont-Cornillon)의 복녀 쥴리앙(축일:4월6일)이라는 한 수녀의 열성에 의해 처음 드려졌다.
1208년 환시 중에 주님께서 제대의 성체성사를 공경하는 연중 축일이 빠져 있음을 자신에게 알려주셨다고 그녀는 말하였다. 얼마동안의 시간이 지난 후 리에즈의 주교와 특히 후에 교황 우르바노 4세가 된(1261) 쟈끄 빤딸레옹 대부제가 이 계시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오르비에또(Orvieto) 근처 볼세나(Bolsena)에서 일어난 성체성사 기적에 감명 받은 우르바노 4세는 1264년, 오르비에또에서 교서 "Transiturus"를 반포하는 가운데 새 대축일을 제정하였으며,
이 대축일은 성령강림절 팔부 다음 목요일에 성체본潁?기념하여 지내게 되었다.
쥴리앙은 몽 꼬르니용의 한 젊은 수사에게 새 축일 시간전례 기도문을 만들 것을 부탁하였었다.
하지만 우리 시대까지 사용되고 있는, 교황의 교서에 함께 붙어 있는 시간전례 기도문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근대의 연구는, 이 축일을 위한 미사와 시간전례 기도문은 성 토마스가 만든 것이라는 전통적 견해를 지지하고 있는 경향이다.
교황이 새 축일을 서방 교회 전체가 지키도록 자신의 권위로 명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오랫동안 이 축일은 "새 대축일"이라 불렀다.
또한 성체성사 축일, 하느님 축일, 지극히 고귀한 성사 축일, 그리스도의 몸과 피 대축일로도 불렀다.우르바노 4세가 새 축일을 세운지 두 달 후에 죽은 까닭에 그의 교서는 실현되지 못하였다.
클레멘스 5세(1311-1312)와 요한22세(1317)가 이 교서를 새로 확인한 다음에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이 전 교회에 받아들여졌다.
이 축일을 진작시킨 세 교황 가운데 성체 행렬에 대해 언급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러 지역에서는 빠스카 아침 지성소의 그리스도의 "무덤"에 빨마 가지를 든 채 성체를 모시고 행진하거나 또는 성대하게 성체를 옮겼다. 본래 의미의 성체 행렬(성체 거동)은 13세기 말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풍습은 14, 15세기에 퍼져나갔다.
로마교회는 15세기에 이를 받아들였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홈에서)
*세계성체 대회 수호성인.성 파스칼 바이런 수도자 축일:5월17일.게시판1768번.
*몽 꼬르니용의 복녀 쥴리앙 축일:4월5일(4월6일)게시판1787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성체성사는 우리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
그 깊은 신비에 도달하려면 보이는 것에서 출발하여 믿는 것이 이르고, 더 나아가 믿는 것을 실행하여야 한다. ’보이는 것’이란 빵과 포도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물질적인 빵과 포도주를 사람들에게 먹고 마시라고 주신다.
주시고 받는 양쪽의 행위가 그리스도와 우리의 계약을 암시한다.
’믿는 것’이란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만찬에서 미리 보여 주신 제사이다.
예수님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표징으로 인류에게 당신의 생명을 내주시며 당신의 파스카에서 온갖 은혜를 받아 누리게 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빵을 나눌 때마다, 당신을 내주시는 그리스도의 현존과 제대 위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성사의 현존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믿는 것을 실행’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삶은 인간 존재를 충만하게 할 것이다.
보편적인 사랑을 실천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사람들 가운데 살아 계시며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다. 여기에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이중 계명이 하나 되고,
믿음과 삶은 다르지 않다는 체험을 입증하게 된다.
복음서가 전하는 성체성사의 제정은 예수님의 죽음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앞당겨 거행한 성사적 표징이다.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살과 피를 제자들에게 주신다.이것은 새로운 계약의 예고이며, "흠 없는 어린양"의 희생으로 날인될, 세상 끝날까지 그리스도의 죽음을 실현하는 성사가 될 것이다 .
◎ 알렐루야.
○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니,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리라.
◎ 알렐루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사는도다.
우리는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구원의 보증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희망과 기쁨을 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모실 때마다 희망을 갖고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잔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매일미사에서)
Supper at Emmaus-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48.Oil on canvas, 42 x 60 cm.Musee du Louvre, Paris
성 프란치스코의 권고1
그리스도의 몸
1) 주 예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2)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3) 이번에는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4)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희는 나를 모른단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나의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6-9).
5) 아버지는 "사람이 가까이 갈 수 없는 빛 가운데 계시고"(1디모 6,16),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며"(요한 4,24),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요한 1,18).
6) 그래서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주기에"(요한6,63)
영적으로써가 아니면 그분을 뵈올 수 없습니다.
7) 이와 같이 아드님도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기에 아버지를 뵈옵는 방법과 다르게
또한 성령을 뵈옵는 방법과 다르게는 아무도 아드님을 뵈올 수 없습니다.
8) 이 때문에 주 예수를 그분의 인성에 의해 보았지만 영과 천주성에 의해 그분이
하느님의 참 아드님이시라는 것을 보지도 않고 믿지도 않은 모든 사람들은 단죄 받았던 것입니다.
9)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제대 위에서 사제의 손으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축성되는 성사를 보면서 영과 천주성에 의해 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피라는 것을 보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모든 사람들도 단죄받습니다.
10)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이것을 증명해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
"이것은 내 몸이며 많은 사람들을 위해 흘릴 새로운 계약의 나의 피이다"(마르14,22.24).
11) 또한 말씀하십니다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다"(요한 6,54).
12) 이 때문에 당신을 믿는 이들 안에서 머무르시는 주님의 바로 그 영이
주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입니다.
13) 이 영의 한 몫을 지니지 않은 채 방약무인(傍若無人)하게 주님을 받아 모시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1고린11,29).
14) 그러니 "한다한 사람들이여, 언제까지나 굳은 마음을 가지렵니까""(시편 4,3).
15) 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느님의 아들을 믿지 않습니까?(요한 9,35).
16) 보십시오! 그분은 어좌에서 동정녀의 태중으로 오신 때와 같이 매일 당신 자신을 낮추십니다.
17) 매일 그분은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에게로 오십니다.
18) 매일 사제의 손을 통하여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제대 위에 내려오십니다.
19) 그리고 당신 자신을 실제로 육(肉)으로 거룩한 사도들에게 보여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축성된 빵으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보여 주십니다.
20) 그리고 그들은 육신의 눈으로는 그분의 육신만을 보았지만 영신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분이 하느님이심을 믿었습니다.
21) 이와 같이 우리들도 육신의 눈으로 빵과 포도주를 볼 때,
그것이 참되고 살아 있는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피라는 것을 보도록 또 굳게 믿도록 합시다.
22) 이와 같이, "나는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하고
당신 자신이 말씀하시는 대로 주님은 당신을 믿는 이들과 함께 이런 형상으로 항상 계십니다
(작은형제회홈에서)
가톨릭대사전에서
성체 聖體
라틴어 Eucharistia
영어 Eucharist
빵과 포도주의 외적인 형상 속에 실제로, 본질적으로 현존(現存)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말한다.
어원적으로는 희랍어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말의 본래의 뜻은
’감사하다’는 것이다.이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은혜에 감사함을 의미한다.
구약성서에는 성체에 대한 많은 예표(豫表)들이 나오는데 창세기 14장 18절의 ’떡과 술’의 표현이 그 한 예이다. 또한 예수는 스스로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라고 하셨으며,
최후만찬 때 하신 말씀(마태 26:26-28, 마르 14:22-24, 루가 22:19-20, 1고린 11:23-25)을 통하여
성체성사(聖體聖事)를 설정하신 것이다.
따라서 성체에 대한 확신은 예수의 강력한 말씀에 근거하므로 성체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성체는 미사 중 성찬의 전례 부분에서 축성되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해져 한 가지 신비를
세 가지 측면에서 보여준다.
우선 성체는 세상 끝날까지 인간과 함께 계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비롯된
’실재적’이며 ’신체적’인 현존이다.
또한 성체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이다.
즉, 미사성제를 통해 이 희생이 계속됨으로써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성체는 사랑의 일치를 보여준다. 즉 신자들은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하느님과의 일치라는 영혼의 초자연적 생명을 기르게 되는 것이다.
성혈 聖血
라틴어 Sanguis Pretiosissimus
영어 Precious Blood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 성혈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이룩한
영원한 생명을 준비하게 된다(요한 6:54-56 참조).
성혈에 대한 신심은 전통적인 것으로서 특히 교황 글레멘스(Clemens) 6세(재위: 1342-1352)는
그리스도의 피는 성자와 함께 결합되어 있기에 너무나 귀중하여
단 한 방울의 피로써도 모든 인류의 속죄에 충분하다고 하였다.
또한 1849년, 교황 비오(Pius) 9세는 7월의 첫 일요일을 성혈 축일로 지정하여 모든 교회가 지키도록 했으며, 1914년 교황 성 비오(St. Pius) 10세는 축일을 7월 1일로 변경시켰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성혈 축일을 성체 축일에 함께 기념하게 되었다.
즉 삼위일체 주일 후의 첫 목요일이나 첫 일요일은 성체 성혈 대축일의 이름으로 기념한다.
Last Supper - DUCCIO di Buoninsegna
1308-11. Tempera on wood, 50 x 53 cm. Museo dell'Opera del Duomo, Siena
최후만찬 :
예수께서는 공생활 3년을 마칠 무렵 그 당시의 관습대로 예루살렘에서 파스카 축제를 지내려고 하셨다.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시고 마지막 만찬을 제자들과 같이 하기로 하셨다,
그것은 평소 예수께서 제자들과 같이 이 파스카 축제를 지내려고 하셨기 때문이다(루가 22:15).
예수께서는 ’만찬 도중에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을 먹는 예식을 하시다가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니라" 하고 말씀하셨다(마태 26:26).
식사를 마치시고 포도주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내 피를 흘리는 것이다"(루가 22:20) 하시며 제자들에게 "나를 기념하여 이 예를 행하라" 하시며 마시도록 권하였다.
이로써 최후만찬 때 예수께서는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새로운 계약을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과 맺었던 것이다. 사도들에게 파스카 축제를 같이 하기로 한 이유는 모든 이의 죄사함을 위한 새로운 계약에 제자들을 참여시키고 그들 제자들로 하여금 ’이 예(禮)를’ 영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미사성제(성체제의)는 영적 생명을 위한 양식이고 천상의 파스카 잔치의 전신인 것이다.
구약의 파스카와 신약의 파스카(최후만찬)를 비교해 보면 그 뜻이 확실해진다.
구약의 파스카- 어린양의 희생 · 양고기(음식) · 양의 피(해방의 표시) · 노예생활에서 해방(육체적)
신약의 파스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 · 그리스도의 몸(빵, 음식) ·
그리스도의 피(포도주, 새로운 계약) · 죄와 죽음에서의 해방(영생)
이렇게 비교해 볼 때 구약의 파스카와 신약의 최후만찬은 형태는 비슷하지만 내용은 전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구약의 파스카는 상징적이고 현세적 생명을 말하며 신약의 최후만찬은 실체적이고 영생을 위한 것이다.또한 구약은 신약의 준비이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완전한 해방,
즉 죄와 죽음에서 벗어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신약에서 자신의 몸과 피를 제물로 바쳐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희생되시고 ’모든 사람들의 죄 사함을 위해’ 자신의 몸과 피를 제물로 바쳐 영적 양식으로 우리에게 남겨 주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을 신약에 참여시키기 위해서 십자가의 혈제를 피 흐르지 않는 제사
즉 빵과 포도주의 형태 안에 스스로를 제물로 바친 것이 바로 미사성제(성체성사, 성체제의)이다.
*[성목요일]주님 만찬 미사:4월8일(이동축일).게시판1703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성체의 제전은 초대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 신자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이 예를 나를 기념하기 위해 행하여라"란 말씀으로 가톨릭 교회는 오늘날까지
세상 어디서든지 사랑과 신뢰와 신앙으로 성체의 제정을 행하여 왔다. 이 성체제전은 미사성제이다. 십자가의 희생은 그리스도가 인류 구원의 대사업을 위해 스스로를 제물로 봉헌했기 때문에
봉헌자도 그리스도이시고 제물도 그리스도이시다.
남을 위해, 남의 속죄를 위해 바치는 희생제물은 참다운 봉헌이고 참다운 제사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이 위대한 사업을 완수하시기 위하여 성교회 안에,
특별히 전례행사 안에 항상 현존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미사성제에 있어서 특히 성체 형상 안에 현존하시지만, 사제의 인격 안에도
현존하신다.
즉 "전에 십자가상에서 당신 자신을 봉헌하신 같은 분이, 지금도 사제들의 봉사를 통하여
제사를 봉헌하고 계시는 것이다"(트리엔트 공의회 제22차 회의, 미사성제에 관한 교리 제2장).
이렇게 미사성제에 있어서도 제물도 제관도 그리스도 자신인 것이다.
사람인 사제는 다만 그리스도의 도구인(道具因)일 뿐이다.
십자가상의 희생이나 미사성제는 방법상 다를 뿐이지 인류 구원과 속죄의 제사임에는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또한 동정녀 마리아 몸에서 태어난 나자렛의 예수.
공생활 3년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시던 예수,
기적을 행하고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시던 예수,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어 성부께 영광을 받은 천상의 예수,
빵과 포도주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는 다만 한 예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최후만찬 때 자기의 사명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 다시 아버지께 돌아간다"(요한 16:28)라고.
그러나 그리스도는 혼자 아버지께 돌아가기 위해서 오신 것은 아니다.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성부께 데리고 가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자기와 같이 사람들을 성부께 데려가기 위한 가장 뛰어난 사업이 성체성사의 제정이다.
그래서 성체는 성부께로 가는 길이다.
성체는 우리를 성체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성부께로 돌아가게 하는 성사이고,
구원사업의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완전히 실현하는 성사이다.
그리스도 즉 우리들의 사제이시고 중개자이시고 우리들을 위한 제물이고 길이신 그리스도는
성체 안에서 성부와 우리를 만나게 하신다.
성체성사는 다른 모든 성사의 정점이요 완성이다.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
○ 엎디어 절하나이다.
눈으로 보아 알 수 없는 하느님,
두 가지 형상 안에 분명히 계시오나
우러러 뵈올수록 전혀 알 길 없삽기에
제 마음은 오직 믿을 뿐이옵니다.
● 보고 맛보고 만져봐도 알 길 없고
다만 들음으로써 믿음 든든해지오니
믿나이다. 천주 성자 말씀하신 모든 것을.
주님의 말씀보다 더 참된 진리 없나이다.
○ 십자가 위에서는 신성을 감추시고
여기서는 인성마저 아니 보이시나
저는 신성, 인성을 둘 다 믿어 고백하며
뉘우치던 저 강도의 기도 올리나이다.
● 토마스처럼 그 상처를 보지는 못하여도
저의 하느님이심을 믿어 의심 않사오니
언제나 주님을 더욱더 믿고
바라고 사랑하게 하소서.
○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성사여,
사람에게 생명 주는 살아있는 빵이여,
제 영혼 당신으로 살아가고
언제나 그 단맛을 느끼게 하소서.
● 사랑 길은 펠리칸, 주 예수님,
더러운 저, 당신 피로 씻어주소서.
그 한 방울만으로도 온 세상을
모든 죄악에서 구해 내시리이다.
○ 예수님, 지금은 가려져 계시오나
이렇듯 애타게 간구하오니
언젠가 드러내실 주님 얼굴 마주 뵙고
주님 영광 바라보며 기뻐하게 하소서.
◎ 아멘.

St. Bede the Venerable, Priest, Monk, Scholar
축일:5월25일 성 베다 사제 학자 St. Bede the Venerable St. Bede, Benedictine, Doctor, San Beda detto il Venerabile Sacerdote e dottore della Chiesa Monkton in Jarrow (Inghilterra) 672-673 - Jarrow, 25 maggio 735 Born:672 at Wearmouth, England Died:25 May 735 Canonized:1899 by Pope Leo XIII Father of English History
673년 위어마우스 수도원 근교에서 태어났다. 성 베네딕도 비스코프에게 교육을 받았고 수도원에 입회한 후 사제가 되어 가르치고 저술하는데 생애를 바쳤다. 교부들의 전승을 따르고 성서를 주석하는 신학 및 역사학의 저술을 남겼다. 735년에 세상을 떠났다.
성 베다의 임종에 대한 커버스트의 편지에서 (Nn. 4-6 PL 90, 64-66)
나는 그리스도를 보고 싶습니다.
예수 승천 대축일 전 화요일이 되었을 때 베다 형제의 병세는 악화되어 숨결이 매우 거칠었고 발은 약간 부어 올랐다. 그러나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온종일 우리에게 학습을 지도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자신이 저술하려는 것을 받아쓰게 하였다. 다른 여러 가지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습 과제를 지금 속히 배우십시오. 내가 얼마나 오래 살아있을지는, 잠시 후 나를 지으신 분께서 데리고 가실는지 모르니까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가 자신의 죽음이 언제 올지 잘 알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수면도 취하지 않고 감사 드리면서 그날 밤을 지새웠다.
수요일 아침이 밝아 오자 우리가 이미 시작했던 것을 지체하지 말고 끝마치라고 지시했다. 우리는 아홉시까지 그일을 했다. 아홉시자 되자 그날 늘 하던 대로 유해 행렬을 했다.. 우리 중 하나가 그의 곁에 남아 있었는데, 그는 베다 형제께" 스승님, 스승께서 받아쓰게 하신 그 책은 아직도 한 장이 더 남아 있습니다. 저희 질문에 계속 대답하시는 것은 무리가 되시겠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펜을 뾰족하게 깍고 나서 빨리 쓰시오." 그 형제는 성인이 지시하는 대로 했다.
오후 세시가 되자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옷장속에는 몇가지 선물, 후추가루, 수건 그리고 향이 있습니다. 빨리 달려가서 우리 수도원의 사제들을 모시고 오십시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은 비록 적은 것이지만 그분들게 나누어 주고 싶습니다." 사제들이 왔을 때 모두 모아 놓고 말씀하면서 각개인에게 자기를 위하여 미사와 기도를 바쳐 달라고 권고하며 간청했다.그들은 기꺼이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그들의 얼굴을 이 세상에서 얼마 더 보지 못할 것같이 생각된다고 말했을 때 형제들은 모두 큰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다음 말을 하는 것을 들었을 때 모두 기뻐했다. "나를 지으신 분의 마음에 드신다면, 지금 이 시간이 내가 존재하기 전 무로부터 나를 지어내신 분께로 돌아갈 때입니다. 나는 오래 살아왔고 자비로우신 심판관께서는 내 일생을 당신 섭리로써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떠날 시간이 다가왔으니 내 몸이 해체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갈망합니다. 내 영혼은 영광 속에 나의 임금이신 그리스도를 보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감화를 주는 다른 여러 가지 말씀을 하면서 저녁이 될 때까지 이날을 기쁘게 보냈다.
내가 이미 말했던 윌버트라는 젊은 형제가 다시 "스승님, 아직도 쓰지 못한 문장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라고 말하자, 그는 " 그 문장을 빨리 쓰십시오." 라고 대답했다. 잠시 후 젊은 형제가 "이제 다 되었습니다." 라고 말하자 스승은 " 그 말이 맞습니다. 다 되었습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손으로 내 머리를 받쳐 주시오. 내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도록 내가 즐겨 기도했던 성당을 향해 기대어 앉기를 정말 원합니다." 그리고 나서 방바닥에 누워 영광송을 외우기 시작하여 "성신께"를 외울 때는 숨을 거두었다. 그가 항상 하느님을 찬미하는 데 그토록 노력한 것을 생각하면 자기가 그리워하던 천국의 기쁨으로 틀림없이 옮겨 갔다고 우리는 믿는다. (가톨릭홈에서)
성 베다 사제의 「루가 복음 주해」에서 (Lib. 1,46-55: CCL 120,37-39)
성모 찬송가
"그리고 마리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내 마음 기뻐 뛰노나이다.’" 주님이 그다지도 엄청난 전대 미문의 은총으로 나를 높여주셨기에 어떤 말로도 그것을 표현할 수 없고 또한 마음의 가장 깊숙한 정감도 그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영혼의 힘을 다 합쳐 감사와 찬미를 바치는 데 모두 소모해 버립니다. 내 모든 삶과 모든 정감과 모든 이해력으로 감사와 찬미 가운데 끝없으신 그분의 위대함을 관조합니다. 나의 태중에 시간 안에 육신으로 잉태된 구세주 예수님의 영원한 신성을 보고 내 영혼은 기쁨 속에 즐겨 뛰놉니다.
"능하신 분이 큰일을 내게 하셨음이요, 그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시로다. " 마리아는 여기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나이다." 라는 찬가의 시작 부분을 되돌아보시고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즉 주님이 위대한 일을 해주시는 영혼만이 마땅한 찬송으로 주님을 찬미할 수 있고 그와 함께 구원의 약속을 받은 이들에게 함께 찬송하라고 다음과 같이 응당히 요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와 함께 주님을 찬송하라. 우리 함께 그 이름을 높여 드리자."
자기가 알고 있는 주님을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찬송하는 것과 그분의 이름을 거룩히 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라고 불리웁니다. 그분은 당신이 지니신 유일하고도 가장 큰 능력으로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시고 당신이 지어내신 만물에서 멀리 떨어져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비하심을 아니 잊으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도다." "이스라엘은 내 종이기에 나는 그를 사랑했노라." 는 호세아서의 말씀에 따라 주님은 복종 잘하고 겸손한 이스라엘을 구하시고자 뽑으셨기 때문에, 마리아는 이스라엘을 아름다운 말로 "주님의 종" 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을 낮추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결코 구원받을 수 없고, 예언자와 더불어 "보라, 주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께서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도다." 라고 말할 수도 없으며, "하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라는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이미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위하여 영원히 우리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바로다." 마리아는 여기서 아브라함의 육신적 후손이 아닌 영신적 후손을 말해 줍니다. 즉 아브라함으로부터 육신을 따라 내려오는 할례를 받은 이들만이 아니라 할례를 안 받았어도 아브라함의 신앙의 발자취를 따르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 역시 할례를 받기 전에 믿어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따라서 구세주의 오심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 즉 약속의 자녀들에게 약속되었습니다. 그들에 대해 바울로는 말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따라서 약속에 의한 상속자들입니다."
주님의 어머니도 요한의 어머니도 자기 자녀들의 탄생을 예언 중에 미리 전하는 것은 옳습니다. 죄가 여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처럼 축복도 여인으로부터 비롯되고, 한 여인이 속임을 당해 잃어버린 그 생명이 서로 다투듯이 예언하는 이 두 여인으로 인해 되찾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홈에서)
베다는 살아 있을 때부터 공경을 받기 시작한 몇 안되는 성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저서는 신앙과 학식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공의회는 그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도 교회 안에서 그 책들을 공적으로 읽도록 지시할 정도였다. 베다는 어린 나이에 자로우의 성베네딕토 수도원 원장의 보호에 맡겨졌다. 학덕과 성덕을 겸비한 수도자들의 가르침을 받게 된것은 이 천재에게는 행운이었으며, 따라서 그가 성인이 되고 뛰어난 학자, 어쩌면 그 시대의 가장 뛰어난 학자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당시의 모든 학문 즉 자연 철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원리,천문학,산수,문법,교회사, 성인들의 생애, 그리고 특별히 성서에 대해 깊이 파고들었다.
30세에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19세에 부제품을 받음-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배우고 쓰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는 필사(筆寫)한 수 많은 책 외에도 자신이 직접 45권이나 되는 책을 저술하였는데 그 중 30권은 성서 주석에 대한 것이다.
왕과 다른 귀족들, 심지어는 교황 세르지오 1세까지도 열심히 그를 찾아왔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신의 수도원에 계속 머물러 있고자 했다. 단 한 번 그는 요크의 대주교가 운영하는 학교에 가르치러 가기 위해 몇 달 동안 수도원을 떠난 적이 있었다.
베다는 그가 좋아하는 기도인 영광송을 바치면서 735년에 세상을 떠났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신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그의 ’교회사’는 저술 역사의 기술과 학문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 것으로 간주된다. 그가 죽었을 때에 그리스도교의 황금시기는 끝나가고 있었다. 그는 서방의 그리스도교가 로마를 벗어난 북쪽의 야만족들에게 적응할 준비를 하던 목적을 달성했다. 이러한 적응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베다는 교회 생활에 있어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을 인식했던 것이다.
베다의 ’교회사’는 그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지만 다른 모든 학문, 특히 성서에 관한 그의 저서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 사순절에 그는 성요한의 복음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고 죽는 날까지 그것을 보충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에게 말씀을 나누어 주는"이 저서는 오늘날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베다의 그리스도교인다운 생활과 죽음보다 더 나은 어떤 것을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우리의 모든 발견들은 그 정도인 것처럼 보인다."(’교회사’의 편집인 C.플뤼머)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웨어마우스에서 태어난 그는 성 베네딕도 비스코프에게 교육을 받았으며 영국 쟈로우이 베네딕도 수도원에 들어가서 평생을 그곳에서 자신이 표현한대로 "신성을 찬양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기 위하여" 지냈다. 자연주의자이며 역사학자, 시인이었던 그는 또한 훌륭한 신학자였다.
간단한 설교로써 성서를 쉽고도 감동적으로 깨닫게 하였다. 그분의 시 중에서는 동정녀 성 마리아를 찬양하는 매우 아름다운 시가 몇 편 있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슬기로운 지도자들은 밝은 하늘처럼 빛날 것이며 대중을 바로 이끈 지도자들은 별처럼 길이길이 빛날 것이다.“ (다니 12,3). 이 구역의 예언은 성 베다에 대해서도 적용될 것이다. 그는 베네딕토회의 수도자로서 4세기부터 5세에 결쳐 게르만 민족이 이탈리아, 그리스 등에 침입해 찬란한 문화의 꽃을 뿌리 채 멸망시키려고 했을 때 이를 보호해 뒷날 서양 문명의 귀중한 모태가 되도록 한 것은 주로 그의 공로 덕분이라 할 것이다. 또한 그는 당시의 신학과 기타 일반 학문의 방면에 있어서도 큰 공적을 남겼다.
그는 672년 영국 웨어마우스 쟈로우의 세인트 피터와 세인트 폴 수도원 근처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이 수도원으로 보내져서 베네딕토 비스콥 원장과 체오프리드의 지도 아래 교육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베다는 매우 급속히 지식이 진보해 교사인 수사까지 놀라게 했으나 그의 경건한 신심도 이에 못지 않게 뛰어나 모든 덕을 닦는데 극히 열심했다. 이리하여 19세로서 일찍이 부제가 되고 나서 신학 연구에 전념하기 11년만에 사제로 서품되었으나 그 뒤에도 연구를 계속해 마침내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가 성인이라는 평판은 이미 그 수도원에서부터 영국 전토에 퍼져 주교, 국왕과 같은 권력자도 그와 교제하며 그의 예지와 덕행의 빛이 충만한 말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더욱이 그의 말이 일층 더 권위를 지니게 한 것은 그의 성스러운 생활인데, 일반 사제, 수도자들도 그의 고결한 모범을 우러러보고서는 엄숙히 정장을 하고, 스스로 반성해 개과천선에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St. Bede, Benedictine, Doctor
성인이 무엇보다 힘을 쓴 것은 성서 지식의 보급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보급을 위해 거의 모든 성서의 주해서를 저술했다. 또한 여력을 기울여 물리, 천문, 식물 등의 방면에서도 박학한 지식을 쌓아 많은 저서를 발간했고, 동양 문화를 서양에 소개하는 일에도 크게 공헌한 바 있었다. 이상을 보고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베다는 직접 선교 사업으로 진리를 수많은 나라에 전한 성 보니파시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 프란치스코 솔라노와는 달리 주로 문필로써 사람들 사이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노력했다.
끊임없는 노고 때문이었는지 위의 질병과 호흡 곤란 등으로 고생하면서도 담당하고 있던 신학생에게 하는 강의를 중단하지 않고 공동 기도에도 출석할 뿐 아니라 한밤중에도 다윗의 시편을 외우며 주님께 기도드린 때가 많았다고 한다. 병약의 몸인 그가 주님께 불리어 그의 찬란한 공적의 보수를 받기 위해 천국으로 떠난 것은 735년 5월 26일 마침 주님 승천 축일이었다.
그는 뛰어난 학자이면서도 겸손했으며 영국사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1899년 교황 레오 13세가 교회 박사로 선언했고, 성 보니파시오는 베다를 일컬어 ‘성령의 빛이자 교회의 빛’,‘우리 스승이신 복자 베다’라 했다. 그는 단테의 천국 편에 나오는 유일한 영국인이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축일:6월5일.게시판1197번.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축일:12월3일.게시판1504번. *성 프란치스코 솔라노 축일:7월14일.게시판1677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St. Bede’s Tomb Photo ⓒ The Dean and Chapter, Durham Cathedral.
시편 제 103 (102)편1)
[다윗]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라. <104,1.35> 내 안의 모든 것들아,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미하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라. 그분께서 해주신 일 하나도 잊지 마라.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130,8> 네 모든 아픔을 낫게 하시는 분. <41; 출애 15,26; 욥 42,10>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내시고 <107,20> 자애와 자비로 네게 관을 씌우시는 분. 그분께서 네 한평생을2) 복으로 채워주시어 네 젊음이 독수리처럼 새로워지는도다. <이사 40,31> 주님께서는 정의를 실천하시고 억눌린 이들 모두에게 공정을 베푸시는도다. <146,7> 당신의 길을 모세에게, 당신의 업적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알리셨도다. <로마 3,2> 주님께서는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86,15; 145,8; 출애 34,6-7; 야고 5,11>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는도다. 끝까지 따지지 않으시고 끝끝내 화를 품지 않으시며 <이사 57,16; 예레 3,12; 에제 20,44; 요엘 2,13; 요나 4,2> 우리의 죄대로 우리를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우리에게 갚지 않으시는도다. 오히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은 것처럼 그분의 자애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에 굳세도다. <36,6; 47,2; 이사 55,9> 해뜨는 데가 해지는 데서 먼 것처럼 우리의 허물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하시는도다. <미가 7,19> 아비가 자식들을 가엾이 여기듯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가엾이 여기시니 <145,9; 예레 31,20> 우리의 됨됨이를3) 아시고 <욥 10,9> 우리가 티끌임을 기억하시기 때문이로다. <90,3> 사람이란 그 세월4) 풀과 같아 <90,5-6; 102,12; 이사 40,6-7> 들의 꽃처럼 피어나지만 바람이 그를 스치면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아내지 못하는도다. <90,6; 욥 7,10; 8,18> 그러나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100,5; 출애 20,6; 루가 1,50>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에 머무르고 당신의 정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당신의 계약을 지키는 이들에게 <신명 33,9> 당신의 규정을 기억하여 실천하는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하늘에 당신 어좌를 든든히 세우시고 <11,4> 그분의 왕권은 모든 것을 다스리는도다. <22,29> 주님을 찬미하라, 그분의 천사들아 그분 말씀에 귀기울이고 그분 말씀을 실천하는 힘센 용사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그분의 모든 군대들아 <148,2> 그분 뜻을 실천하는 신하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그분의 모든 조물들아, <145,10> 그분 왕국의 모든 곳에서.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라. <다니 3,57>
1. 시편 103은 ‘개인 감사시편’의 요소가 들어있는 ‘찬양시편’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감사 찬양시편’이라 부르기도 한다. 입문 4, (1)의 (가)와 (2)의 (다) 참조. 2.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말은 본디 ‘치장, 장신구’를 뜻하는 낱말이지만, 여기에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칠십인역은 “원의”, 시리아어역은 “몸”, 아퀼라와 예로니모는 “치장”, 타르굼은 “노년”으로 옮긴다. 3. 이 낱말은 (2행의 “티끌”도 참조) 창세 2,7에 묘사된 하느님의 창조를 상기시킨다. 4. 직역: “그의 날들.” (새번역성서. 가톨릭홈. 한국천주교 주교회의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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