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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하는 인간
“그러나 당신 안에는 용서가 있으므로,
우리는 당신을 경외하나이다.”(시편 130,4)
우리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또한 우리를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하시는 분이시기에
- 우리가 감동을 받고 저절로 존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느님의 용서가 먼저이고
그 다음으로 따라오는 것이 우리들의 경외이다.
이것은 부모와 자녀의 경우를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다.
부모가 자녀를 용서하는 것은
- 자녀가 먼저 부모를 공경하기 때문이 아니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 가득한 서를 체험하고
그에 대한 감사로 부모에게 공경을 드리는 것이다.
먼저 용서를 베푸시는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예수께서는 만찬 때 제자 중의 하나가
당신을 배반할 것임을 예고하신다.
그러나 예수께서 잔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돌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모두’라는 말에 당신을 팔아넘기기로 작정한
- 유다도 포함한다는 말이다.
유다가 회심하지 않았어도 이미 용서를 베푼 것이다.
- 나아가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루가23,24) 라는 기도를 바친다.
‘용서’는 성경 메시지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성경의 메시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인간 구원이고
- 그 구원을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바로 ‘용서’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용서는 우리가 무슨 죄를 짓든
- 무조건 눈감아 주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처리해 주는 것을 말하는가?
- 그렇지는 않다.
죄를 지었는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은
용서를 체험할 수 없다.
또 죄를 인식한다 하더라도 통회하지 않는 한
용서를 체험할 수 없다.
죄 지었음을 알뿐만 아니라
- 어느 정도 깊이 통회하느냐에 따라
용서 체험의 정도가 달라진다.
깊이 통회하는 사람은 그만큼
하느님의 용서를 깊이 체험할 것이요,
적게 통회하는 사람은 적게 체험할 것이다.
자비하신 하느님의 용서를 잘못 이해하고
-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바오로 사도가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이 넘친다.”고 했으니
- 은총이 더 넘치려면, 죄를 더 많이 지어야지
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용서를 악용하는 것이다.
송 봉 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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