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와 글 하느님은 부서진 것을 사용하신다 rosary 2010. 6. 2. 14:49 "하느님은 부서진 것들을 사용 하신다" 는 히브리 격언이 있습니다. 단단한 곡식이 부서져야 빵이 됩니다. 포도주도, 향수도 잘게 부서짐을 통하여 만들어집니다. 단단하고 질긴 음식도 우리의 입안에서 고르고 잘게 부서져야 소화되어 영양분이 됩니다. 사람도 원숙한 인격과 신앙을 갖추려면 반드시 부서지는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부서짐의 size가 성숙의 size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농부이신 하느님도 우리에게 도리개질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말이죠. 더 많이 부서지라 하심입니다. 더 많이 깨어지라 하심입니다. 더 많이 죽으라 하심입니다. 도리개질의 강도가 하느님 사랑의 깊이 입니다. 왜냐하면, 부서져야 사용하시고, 부서진 만큼 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장간의 대장장이는 일상적인 연장을 만들기 위하여는 달구어진 쇠를 적당히 두들겨 댑니다. 그러나, 특별하고 귀한 도구를 만들기 위하여는 구슬땀을 흘려 가며 한 나절은 두드리고 또 두둘겨 댑니다. 실패케 하고,수치를 당케하고,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억울하게 하고 결국은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 가게 하심입니다. 천주교는 죽음을 통하여 살고 ,버림을 통하여 얻고, 부서짐을 통하여 알곡이 되고, 깨어짐을 통하여 쓰임 받고, 포기함으로 소유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습니다. 하루만 죽어서는 안됩니다. 한번만 죽어서도 안됩니다. 한번만 깨어져서는 안됩니다. 한번만 부서져서도 안됩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 때문에, 주님 위하여, 주님과 함께 죽고, 부서지고, 깨어져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힘들고 고단한 이유는 우리의 중심이 "나는 날마다 사노라" 이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왜, 불쑥 불쑥 혈기가 나나요? 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미움이 일어나나요? 왜, 주체할 수 없는 원망과 짜증으로 시달리나요? 왜, 견딜 수 없는 답답함과 절망감으로 우울해지는가요? 덜 죽어서 그렇습니다. 덜 깨어져서 그렇습니다. 덜 부서져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습니다. 부서지게 하심은 쓰시기 위함이며, 깨어지게 하심은 성숙하게 함이며 죽으라 하심은 살리시기 위함이며 비참하고 초라하게 하심은 그만큼 "내가 너를 사랑한다" 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고목에서 꽃이 피고, 반석에서 샘물 터짐이 더 귀하고 아름답듯 우리의 부서짐과 깨어짐을 통하여 성숙해질 때 더 없는 감동과 기쁨이 두 배겠지요. 어떤 때는 하느님도 "너무하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그만 좀 해도 되지 않느냐고?" 저항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하심"의 때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정하시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특별 대우 하시고 특별하게 사랑하신다" 하시면서 종종 비참하고 초라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비참하고 초라하게 하심은 똑바로 살게 하심입니다. 똑바로 걷게 하심입니다. 똑바로 보게 하심입니다. 똑바로 믿게 하심입니다. 그 사랑에 목메이고 눈물겨워 그분 가슴에 살포시 얼굴을 묻고 고백합니다. "이전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주님의 느티나무 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