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의 집

밀라노에 있는 음악가의 집(Casa di roposo per di Musicisti)

파리 여행 때 오르세 미술관에서 찍은 빈센트 반 고흐의 "시에스타"

베르디 (Giuseppe Fortunio Francesco Verdi, 1813. 10.10 -1901,. 1. 27)은
이태리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 입니다.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가면 무도회>, <맥베스>, <오텔로>, <시몬 보카네그라> 등
오페라를 좋아하는 이태리 사람들에게는 거의 영웅같은 존재이며
그의 오페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여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고 있습니다.
이태리의 북부 부세토(Busseto)에서 가까운 작은 농촌마을인
론콜레(Roncole)라는 곳에서 태어났지만 밀라노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하다가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가까운 그랜드 호텔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가 18세에 입학시험에 떨어졌던 "밀라노 음악원"은
지금은 "베르디 음악원"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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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는 말년에 자신의 재산을 투자해서
은퇴한 음악가들이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음악가 휴식의 집(Casa di riposo per Musicisti)을 밀라노에 마련하고
자신도 죽은 후 이곳에 묻히기를 원하였다고 합니다.
베르디는 평소 베르디에게 자신이 만든 최고의 작품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가난한 음악가들을 위해 안식처를 마련해 준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음악가의 집"은 현재 약 55명의 은퇴한 음악가들이 살고 있고
베르디도 그의 아내와 함께 이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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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의 음악가의 집왼쪽은 베르디의 묘가 있는 곳이고 오른쪽 사진은 정문에서 찍은 것입니다.
이 집은 베네치아의 고딕 양식을 모방한 운치있는 3층으로된 저택이었는데
음악가들이 살고 있는 위층의 아파트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노래하는 소리가 아름답게 들려와서
음악가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은퇴를 했지만 노래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는지
그들은 노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정문 왼쪽으로 사무실이 있었고 정문에서 정면으로 중앙에 있는
베르디와 그의 두번째 아내 조세피나가 묻힌 묘실은
입장료도 없이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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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실 안에는 아름다운 프레스코畵가 사방을 둘러 싸고 있었는데
비록 그 의미를 알 수는 없었지만
음악의 신 뮤즈들이 베르디를 보호하고 있는듯했습니다.

Giuseppe Verdi의 묘

Giusepina Verdi Strepponi의 묘

"모두를 위해 울었고 사랑했다"
베르디와 그의 두번째 아내 주세피나(Giusepina Verdi Streoini)의 묘는
대리석으로 되어있었고 그의 묘 위에는 쓰여있는 碑銘은
"모두를 위해 울었고 사랑했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가 작곡 활동을 활발하게 하던 1840년 대는
유럽 여러나라에서 왕정에 맞서는 진보적 사상의 물결이 일던 시대로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태리에서도 조국 통일을 열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애국심이 유난히 강했던 베르디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오페라를 통해서
이태리의 독립과 통일을 소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조국을 사랑했고 조국을 위해 울었던 베르디의 오페라에 담겨진 애국심은
오페라가 공연될 때마다 온 국민들을 울렸고 베르디에 대해 열광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장례식(State Funeral)에는 정부 고위 관리를 비롯한
수만 명의 행렬이 이어졌고 지휘자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는
전국에서 온 음악가들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구성하여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일명 "가라, 내 꿈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를 지휘했다고 합니다.
그의 유해는 장례식 후 밀라노의 Cinitero Monumentale에 안치되었다가
1개월 뒤 베르디보다 4년 전에 죽은 아내 주제피나가 잠든 이곳,
음악가의 집에 이장되어 영원한 안식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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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일명 <춘희>로 알려진 오페라의 여주인공 비올레타가
순박한 시골청년인 알프레도가 사랑을 고백하고 떠나자
그 때는 알프레도의 고백을 비웃었지만
그의 진정한 사랑을 뒤 늦게 깨닫고 부르는 아리아,
"아, 그대였던가, Ah, fors'e lui"를
Renata Tebaldi (1954)가 부릅니다.
"아, 그 사람인가, 그 사람인가내 마음을 이렇게 뒤흔드는 이사랑의 고민 속에 사로 잡는 이내 맘을 산란케 하는 이가그이였던가, 그이였던가상냥한 그의 음성이사랑을 속삭이고 나를 위로했네그대가 내 영혼 모두 빠앗아갔네내 가슴 깊은 사랑의 궁전에그이로 가득찼네, 오 그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