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교육 2년 안 로사
| 주 제 | 강생하신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
| 목 표 | 그리스도 교리교육의 핵심인, 하느님의 외아들이자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죄로 인하여 단절된 인간과 하느님과의 화해를 위해 오신 분으로 제시해 깨닫게 하고, 참사람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를 묵상함으로써 교리교육의 목표를 이해하고 점검한다. |
| 도 입 | 기쁜 소식-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주셨다. 사도신경의 2절,3절,4절,5절,6절,7절 |
| 전 개 | 1.예수의 칭호 ○그리스도(메시아) ○하느님의 외아들 ○주님 2.예수의 존재 ○말씀이 사람이 되심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 3.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
| 실천적 결론 | 인간의 원형이신 그리스도 추종의 길 자기 비움(겸손의 길) |
| 영성적 성찰 | 오늘도 살아계신 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 그 의미 |
| 끝 기 도 | 주님의 기도,영광송 |
■ 도 입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2절)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시고(3절)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4절)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5절)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어(6절)
그리로부터 산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7절)
그리스도교 신앙의 전달은 무엇보다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이끌기 위해 그분을 알리는 것이다.예수님의 첫 제자들은 그 열정에 불탔고 신앙조문을 통해 예수님의 중요 호칭들을 제시하며 그리스도의 신비를 고백하게 되었다. 강생의 신비, 수난과 부활 곧 파스카의 신비, 영광 받음의 신비까지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지식을 추구하며 그 기쁜 소식을 세상에 알려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친교를 나누도록 초대하고자 했다. 아울러 그 후예들로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알리고 복음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사명을 지닌 우리는 예수에 대한 확고한 지식을 지녀야 함이 우선임에 과연 예수는 누구이신지 알고자 하는 것이다.
■ 전 개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는 출발점인,예수를 직접 목격하고 체험했던 초대교회의 신앙증언과 신약성경을 근거로 예수의 구체적인 면모를 살펴보도록 하자.
1. 예수의 이름과 그 칭호
예수란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의 히브리어 '여호수아'를 그리스어로 표기한 것으로 당시 이스라엘에는 흔히 쓰이던 이름이었다. 구약 성경안에도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시사해주는 바와 같이 나자렛 지역에 태어난 사람 '예수'라는 이름은 그분의 신원과 사명을 동시에 나타내 준다.
①주님 탄생 예고 때에 가브리엘 천사가 가르쳐준 그 이름 안에는 "하느님은 구원이시다"는 구원 섭리의 말씀이 새겨진 것이다.
②이는 하느님의 이름이 당신 아들 인격 안에 현존함을 의미한다. 사람이 되신 당신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결정적으로 드러내신다.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신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자 당신 구원역사의 의지로 당신 아들을 보내셨음이다.
③구약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구원 가능했음에 반해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통하여 보편적이고 결정적으로 구원이 실현되었다.
④ 그에 더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라는 말로 기도하라 가르치신 '예수' 라는 이름은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핵심에 자리잡은 하느님과 인간의 유일한 중개자의 이름이다.
◆예수의 칭호
예수님의 칭호는 그리스도,하느님의 외아들,주님.사람의 아들,하느님의 어린양,말씀,주님의 종 등 여러가지가 있다.
1)그리스도, 메시아
그리스도는 아라메아어 메시아와 히브리어 마시아에서 유래한 메시아와 같은 의미이다.
'기름부음 받은이', 즉 '축성된 이'라는 뜻인데 이를 그리스어에서 크리스토스 곧 '그리스도'라고 번역한 것이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느님께서 세우신 임금, 사제, 예언자들은 도유하는 의식을 치렀는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느님께서 세우신 임금,대사제,예언자라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신적 사명을 완전히 수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이는 예수님의 고유한 칭호가 된다.
예수님께서는 주님 성령을 통해 기름 부음 받아 왕이며 사제요, 또 예언자로서의 삼중 임무 안에서 메시아에 대한 이스라엘의 희망을 채워 주셨다.
가브리엘 천사가 탄생 예고 때에 알려준 약속 된 메시아는 요한에게 세례 받을 때 공적으로 축성되셨다.
성서 안에 나온 유다인의 왕, 고통받는 메시아, 그리스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베드로의 고백(마태 16,16)
공생활 중에 베드로를 통하여 '살아있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되었으며,부활하신 뒤에 메시아 왕권은 완전하게 선포되었다.
②다윗의 자손 예수-(마르코 10,46)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들리신 예리코에서 바르티메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고 외친다. 이처럼 당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이미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③유다인의 왕-십자가의 명패(마르코 15,26)
십자가에 달린 명패에 '유다인의 왕 나자렛 사람 예수' 라고 적혀 있음이 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 명패는 유다인의 메시아, 유다인의 그리스도라는 뜻이다. 예수 수난기에 보면 '자칭 유다인의 왕' 이라고 해야 한다는 대사제들의 항의에 빌라도가 '한번 썼으면 그만이다' 하고 저지하여 쓰여진 문구인데 정치적 선동가로 처형되신 예수님의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④그리스도,메시아-최고 의회앞에서(마르코 14,53-65)
대사제의 '그대가 과연 찬양을 받으실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인가?' 하는 질문에 '그렇다' 하고 대답하신 예수님(마르 14,61), 십자가 죽음 앞에서 결정적 주제인 '메시아' 라는 대답을 하심은 당신의 사명을 인식하셨기 때문이다. 스스로 조롱받는 왕, 십자가 죽음을 당하는 메시아의 길을 걸어가신 것이다.
⑤그리스도,고통받는 메시아-필립비의 카이사리아(마르코 8,27-33)
필립비의 카이사리아에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신 예수님 질문에 베드로는 '선생님은 그리스도 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며 고통받는 메시아를 예고하신다. 부활 이전에 이미 제자들 사이에서는 잠재된 메시아가 아닌 실제 메시아로 여겨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다.
2)하느님의 외아들
①구약 성경에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천사,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의 자녀와 그들의 왕들을 부르던 칭호로 하느님과 피조물 사이에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이루는 자녀로 입양됨을 의미한다.
약속된 메시아, 왕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를 때 예수님이 인간보다 우월한 신적 존재라는 것을 뜻하는 것만은 아니고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지닌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②신약성경에서 베드로는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하는데 이는 다른 의미이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다'(마태16,17) 하신 것처럼 이 경우에는 하느님의 친아들로 초월적 신적 존재를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는 것은 사도 신앙의 중심을 이루었다.
③최고 의회에서 예수님 고발자들-"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말이오?" 할 때 "내가 그러하다고 너희가 말하고 있다" (루카22,70)
④아버지,아빠로 부르게 하심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이시며 너희의 아버지" (요한20,17) 라고 구분하여,당신과 제자들의 하느님과의 관계에 차별성을 두어 말씀하셨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을 '아빠' 라고 부를 수 있도록 이름을 가르쳐 주셨으며 새로운 양자 관계를 맺도록 해주셨다.
⑤부활 이후에는 영광을 받은 인성의 권능 안에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이 결정적으로 드러났다. 바오로 사도는 "죽은 이들 가운데 부할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로마1,4) 며 고백하고 있다.
3)주님(kyrios)
모세에게 계시되었던 감히 부를 수 조차 없는 하느님의 이름 YHWH(야훼)는 그리스말 구약성경에서 주님(kyrios)으로 번역된 것이다. 이 주님의 칭호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지니신 신성까지 포함해 지칭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다스림이 도래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 '주님' 이라는 말은 왕이며 우리의 주인님이신, 즉 절대 주권자이며 하느님을 칭하는 말이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른 것은, 예수님을 바로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새로운 의미인 것이다.예수님 자신도 공생활 중 행하신 당신의 모든 행위들은 하느님의 주권임을 말씀하셨다. 또한 예수님의 도움과 치유를 받고자 원하는 사람들의 존경과 신뢰의 호칭이 되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성령의 작용으로 예수님의 하느님 신비를 인지하게 되었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토마스 사도는 "나의 주님,나의 하느님"(요한 20,28) 하며 부활하신 예수님께 흠숭의 자세를 보인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안에 들어있던 '주님'이라는 칭호는 "하느님과 같은 분" (필리2,6) 임을 드러낸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필리2,11) 권능과 영예와 영광을 예수님께 드려야 함을 선포한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교 기도의 특징도 '주님' 이라는 칭호에서 나타난다. 전례에서도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며 기도에 초대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로 기도를 끝맺게 되었다.
2.예수의 존재
1)말씀이 사람이 되심
인간 구원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셨다.
①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켜 구원하시고자 사람이 되신 분.
②우리에게 하느님 사랑을 깨닫게 하시려고 사람이 되셨으며,(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3,16)
③우리에게 거룩함의 모범이 되시려고 사람이 되셨고,(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11,29,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5,12) 당신의 모범을 따라 서로 자기 자신을 내어주며 살라 당부하시었다.
④우리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시키기 위해 사람의 아들이 되어 오신 분으로 인간과 하느님의 친교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당신의 신성에 우리도 참여 시키신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자 인간 본성을 취하신 강생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 되었고 이를 통해 하느님의 자기 낮춤과 자기 비움은 겸손의 극에 이르게 되었다.
2)참 하느님이며 참 사람이신 예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시다. 인성과 신성 두 본성이 서로 혼동되지 않으면서 단일한 위격안에 결합되어 놀라운 일치의 신비를 보여준다.이 유일하고도 유례없는 강생 사건에 그리스도 가현설 등 많은 이단이 속출하였다.그러나 교회에서는 여러 공의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심을 공포하였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지성과 의지의 활동을 지닌 인간 영혼과 인간 육체의 온전한 실재성을 계속 고백한 것이다.그러나 그 인성 안에 존재하고 행하시는 모든 것은 삼위의 한분으로서 존재하고 행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육체안에서나 영혼안에서 삼위의 신적 삶을 인간적으로 드러내시는 분이시다.
그리스도의 이 신적이고 인간적인 두 의지와 두 작용은 서로 대립하지 않고 협력하여 온전한 인간이자 하느님이심을 드러낸다. 그리스도의 인간적 의지는 자유로, 참된 육체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이는 하느님으로 드러내 주셨고,우리의 죄때문에 찔리신 예수의 성심은 영원하신 아버지의 끊임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으로 우리 자신보다 더 우리를 이해하시는 사랑의 탁월한 표지이자 상징이다.
3.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1)탄생(루카 2,1-52 ; 마태 2,1-23)과 유년시절
그리스도교는 이천년 전에 팔레스티나 나자렛에서 태어난 예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한 유일한 구세주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시다는 신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①성령으로 인하여 동정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강생의 신비)
가브리엘 천사의 탄생 예고로 충만한 때가 시작되었다. 인간 마리아의 협력과 동의 응답을 통해 성령의 파견과 성자의 파견이 연관되어 약속과 준비의 성취가 이루어졌다.
②어린 시절의 신비와 나자렛 생활의 신비
예수님께서도 할례를 받으셨다. 이는 아브라함의 후손,계약의 백성의 일원이 되는 표시이며,이 그리스도의 할례(율법에 속하는 표시)는 이스라엘 예배에 참여할 자격을 얻는 표시이다.이는 세례의 예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주님 공현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메시아,하느님의 아들,세상의 구원자임을 드러내는 신비이다.
또 예수님 성전에 바침과 이집트로 피난하시었다가 그곳에서 다시 올라오심은 구원을 베풀 유일한 십자가 봉헌 예고이다. 이는 예수님 박해와 이집트 탈출을 상기시키면서 예수님을 결정적 해방자로 제시한 신비이다.
아울러 나자렛 생활의 모습은 부모에의 순종,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순종으로 아담의 불순종으로 야기된 파괴를 복구하는 신비를 보여주는 것이다.
2)예수님의 공생활
①예수님 세례사건(루카 4,1 -13)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이 베푸는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빋으셨다.이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당신 몸으로 받아들여 당신 자신을 죄인으로 몸소 여기신 것으로 모든 인간의 조건을 그대로 따르신 사건이다. 또한 당신의 공적 사명의 출발점으로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죄를 없애기 위함이며
⊙아버지 뜻에 온전히 순명하시어 죽음의 세례를 받아들이시고
⊙하느님과 인간의 소통을 가능케 하여 관계를 회복시키신 새로운 창조이다.
②파스카의 신비
예수님께서는 광야의 유혹을 겪으시고(루카 4,1-13)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다(마르 1,15).
모세법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를 살펴보면, 유다인들이 이해한 안식일법, 단식규정, 정결례법 등에 정면으로 도전하시고 모세의 법 대신 진정한 히느님의 뜻을 세우시기 위해 노력하셨다.그분은 인본주의에 입각하여 법률의 목적이 인간과 사회생활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어야 함을 강조하셨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사랑의 이중계명은 모든 법규의 집약이며 절대적 권위를 갖는 것으로 말씀하셨다.
또 비유로 가르치시며 하느님 나라의 표징들을 드러내시면서 가난하고 미소한 자들 안에 기쁜 소식을 전하고 죄인들을 하느님 나라의 식탁에 초대하셨다.하느님의 대리인이라는 예수의 전권 주장은 죄인들과의 교제와 그들과의 공동 식사에서 잘 드러난다. 동방에서의 공동식사의 의미는 평화와 형제애와 용서를 보증한다는 것을 뜻한다. 유다교에서의 식탁 공동체는 하느님 앞에서 누리는 특별한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임에 죄인들과의 공동 식사의 의미는 예수의 사명과 복음의 표현이다. '죄인들을 구원 공동체'에 받아들여 구원하는 하느님의 사랑의 소식을 가장 의미있게 표현한 것으로 전대 미문의 그리스도론적 전권 주장을 내포한 것이다. 이처럼 낡은 질서에 정면 도전하시는 새롭고 역동성있는 예수님의 권위는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이렇게 모든 이를 사랑하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에서 수난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 파스카의 신비는 자기 비움의 절정이며 사랑의 완성이다.
■ 실천적 결론
인간의 원형이신 그리스도 추종의 길은 무엇인가?
사랑의 이중계명의 실천
예수님께서는 인간에게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여 하느님께 응답하는 삶을 살도록 부르셨다.
하느님께서 친히 당신 백성인 우리를 찾아오신 이 복음을 살아가려면 우선 그리스도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단순한 앎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고 그분을 추종하는데 있어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장애물로 여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 가운데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 밖에 없습니다."(사도 4,12)는 말씀처럼 '예수'라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필리 2,9-10)이 지닌 최상의 권능을 드러내야 한다. 이 예수의 이름을 통하여 하느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이다.
아울러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 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8) 는 메시아의 신분은 십자가상의 "하느님의 고난받는 종"의 모습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이렇게 몸소 당신의 삶을 보여 주시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결단을 촉구하신다.
우리 인간 존재는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고 겸손이라는 말의 어원도 그 인간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한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기 겸손과 자기 낮춤의 자세를 배워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아야 하겠다.
또한 내 모든것의 주권은 예수님임에 그분께 내 자신을 온전히 종속시키고 맡기어서 언제나 "마라나 타!(저희의 주님,오십시오!)를 외치며 그분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삶을 준비해야 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분께 은총을 청해야 한다. "성령에 힘 입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의 추종의 길은 스스로의 완덕을 위해 사회와 격리되어 수행하고 생활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자기 비움을 전제로 하여 약자를 위한 저항과 함께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함께 펼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 영성적 성찰
-나에게 예수는 누구이신가?-
오늘도 살아 계신 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도 4,20)
'두려워 하지 마라.나는 처음과 마지막이고 살아있는 자이다' (묵시 1,)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마르 8,29)며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나에게 말씀하신다.그런 물으심에 베드로 사도처럼 자신 있게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하고 대답할 수 있을까 성찰해본다.
복음서는 베드로가 말한 사도들의 체험에서 나오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살아계신 분으로(사도 1,3) 보여 주셨기 때문에 사도들이 예수의 지상 활동과 설교를 수집하여 복음서를 쓰게 된 것이다.
물론 나도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 그동안 은총과 축복의 체험 속에 살아왔다. 그리하여 오늘의 나는 '나의 주님, 나의 구세주' 로 예수님께 그리스도임을 감히 고백하게 되었다. 언제나 부족하고 나약하고 어리석지만, 그분의 권위와 자유에 힘 입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지체인 나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이십니다." 하고 당당히 외쳐야 하겠다.
그분이 '그리스도' 이시다는 표지는 그분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에 있다.
그분이 보내주신 성령을 통하여 지금 바로 오늘 여기에서 주님이신 예수가 우리와 함께 말씀하고 계심을 확신한다. 모든 것 안에서 나와 함께 계시는 주님의 힘으로 한 사도의 길을 걸어가고 있음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한낱 죄인을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 신성에 참여하게 해주신 이 놀라운 은총에 감사드리며 그분께서 가르쳐 주신 '살아계신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안에서 오늘도 내일도 기쁘게 복음을 실천하여 살아갈 것이다.
참고 문헌
가톨릭 교회 교리서 - 한국 천주교 주교 회의
예수 그리스도(교리교육 길잡이 4권) - 전주 가톨릭 신학원
우리 주님이시며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사도신경 해설2권) - 전주 가톨릭 신학원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 - 김 양진 著, 바오로 딸 刊
가톨릭 신자는 무엇을 믿는가?1권 -차 동엽 著, 에우안겔리온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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