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깨달음을 주신 주님

rosary 2009. 12. 1. 14:35

 

깨달음을 주신 주님

 

찬미 예수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이, 세상이 끝나는 듯한 암담함이 기쁨과 감사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주님, 어찌하여 저를 택하시어 이런 영광을 맛보게 하십니까!

미약하기만 한 저의 신앙심을 고양시키고자 하심인가,

항상 바르고 착하게 살고 있다는 저의 교만을 깨닫게 하심인가,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합니다.

 

세례 때의 뜨겁던 첫 마음이 변해 세상을 향하여 열려 가던 때였으나

습관처럼 미사와 레지오에 참석하고,

반 가족들과의 유대 관계(반장으로서 최소한의)와, 첫 발을 내딛은 봉사 활등,

그것으로 저는 참으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그 만족감에 행복했습니다.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 신앙이 도구가 되었던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이 깨우침을 위해 저의 아이를 선택해 주신 것이라면 기꺼이 주님께 봉헌합니다.

주님 손에 저의 아녜스를 맡겨드립니다.

저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비 어미입니다.

주님, 저의 모든 것을 맡기오니 받아 주소서.

 

여느 날과 다름없는 토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아니지요. 남편이 견진을 받는 아주 기쁜 날이었습니다.

격주 주 5일 근무인지라 쉬는 남편에게 견진을 위해 막 염색을 하던 참이었지요.

전화가 오기에 성당 청소 가자는 재촉 전화인가 하며

장갑 낀 한 손에 다소 귀찮은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체육 시간에 딸 아이가 다쳐 대학병원으로 가고 있다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어디를 다쳤는지, 앰블런스 소리는 또 무엇인지 정신이 아득할 뿐이었습니다.

병원에 당도하니 아이는 엄마, 아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울먹였습니다.

토하며 자꾸 졸린다 하였고, 그러면서도 자면 안 되는 거냐고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사랑하는 내 딸!

저 속 깊은 것이 어쩌다 이런 일을 당하였을까 싶었습니다.

딸은 사진을 찍고 수속을 하고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모든 것이 꿈 같았지만 현실이었습니다.

수술실 앞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아빠와 양호 선생님을 두고 여기 저기에 전화를 했습니다.

레지오 가족들, 언니들, 대모님, 기도해 줄 사람마다 생각이 들어 입력된 핸드폰 번호를 눌러 댔습니다.

저는 기도할 수도 없고 그저 "아버지" 만을 부를 뿐이었습니다.

인보의 집에 있다던 언니, 다급하게 왔을 텐데,

그곳에서 기도하지 왜 왔느냐고 안타까운 투정을 했습니다.

수녀님들께 기도를 부탁하고 왔다는 언니의 위로의 말에 다소 안심하고

쁘레시디움 형님들과 함께 수술실 앞에서 계속 묵주기도를 했지요.

수술실에 들어간 지 한 시간 정도 됐을까, 아이가 나오고 엄마를 찾는다 하였습니다.

딸 아이는 무사했습니다. 감사의 말이 나왔습니다.

저는 본당에 감사 미사를 봉헌하라 하였고, 오후에 남편은 견진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길고도 극적인 하루였습니다.

 

일주일 입원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하루에 칠십여명 정도 오셔서,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살고 있구나 하고

감사와 기쁨의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특별한 것은 그 무엇도 없습니다만, 주님의 사랑은 그렇게도 크셨습니다.

보좌 신부님과 수녀님이 방문하시어 안수 기도를 해주셨을 때,

아이는 자신의 머리가 너무나 뜨겁다고 제게 만져 보라 하였습니다.

주님, 어찌 이 많은 사랑을 저에게 주십니까!

저 어린 것이 무얼 안다고 저 아이를 통해서 절 깨우치십니까!

 

하나 하나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였습니다.

입원 중 집에 잠깐 들렀을 때 등기 우편 통지가 와 있었습니다.

내일 열 한시 경에 다시 오마 하는 내용이었지만, 무슨 대수냐 하고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토요일 오후에 퇴원하여 막 집에 당도했는데 우체부가 방문하였지요.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우연의 일치라고 하겠지만 저를 이렇게 사랑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딸이 퇴원 후, 딸아이의 예후에 대해 말하던 의사선생님의 말 때문에 어찌할 바 모르며 지내던 중,

묵주기도끝에 설핏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잠결에 묵주를 쥐고 있던 손바닥 가득,

아이 머리에서 떼낸 뼈조각이 그대로 담겨 보였던 적이 있습니다.

9일 기도후 펼쳐 든 성경책, 살아난 회당장의 딸,

바로 열두살 난 소녀의 이야기가 우리 딸의 이야기로 전이되어 저의 온 몸에 소름이 돋기도 했습니다.

레지오 회합 중 깨달음을 주시어 전문 의사 선생님과 연결이 되어,

상세한 상담에 이어 보호대까지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 모두가 살아계신 주님께서 저에게 주님을 느끼게 해주신 체험의 순간들입니다.

 

참으로 저를 사랑해 주시는 주님,

입으로만 외우던 기도가 가슴으로 솟아오르게 하는 이 체험을 어찌 알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기도를 외울 수 있었던 이 감사함,

그토록 큰 위로와 은총을 내려 주시는 주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멘!!!

 

                                        2001년 12월 레지오 마리애 월보에 실린 글

 

 

                                 

 

-후기-

올해 초, 고 3 수험생이 된 아이는 자주 머리가 아프다 하였습니다.

두개골 골절로 첫 수술에서 머리뼈를 조금 떼 내고, 6개월 후에 인공뼈를 넣는 수술을 다시 했지요.

그때 의사 선생님 말로는 자라면 머리뼈도 함께 커지니까 성인이 되어 다시 수술해야 한다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늘 그것이 걱정거리였는데 이제 그 때가 되었나보다 하고 생각하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보았습니다.

참 걱정이 됐습니다.

수험생이 공부에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할 터인데 어쩌나 싶었지요.

어릴 때 수술 해 주셨던 선생님을 방문하고 검사를 했는데

선생님께서 크게 머리가 자라지 않아 다시 수술을 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고 3 수험생으로서 스트레스성 두통 같다 하셨습니다.

아마도 자라면 수술을 해야 할 지 모른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조금만 아파도 딸아이는 긴장했었나 봅니다.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주님께서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저희 부부는 어린 딸의 머리뼈를 떼어내고 신생아처럼 팔딱팔딱 뛰는 머리를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 했었고, 헬멧을 맞추어서 쓰고 다니게 했으며

다시 인공뼈를 넣고서는 창조때 첫모습 그대로 해달라고, 다시 수술하지 않게 해달라고

억지스런 기도를 했었습니다.

남편은 술을 먹고 귀가가 늦어지더라도 저와 함께 무릎을 꿇고 54일 기도를 두번 바쳤습니다.

그때의 우매한 저희의 기도를 주님께서 들어주신 겁니다.

그동안 저희 부부는 신앙 안에서 많이 성장했습니다.

성가정으로서, 교회 일을 가장 우선으로 하며 성서 말씀 안에서 굳건한 믿음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지극히 저희를 사랑하시어, 당신 성령 안에 머무르도록 붙잡아 주신 그 선택에 감사합니다.

신앙 안에서 잘 자라온 아이는 이제 수능 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가려고 준비 중입니다. 

오늘도 저희 가족들이 주님과 함께 충만함 속에 살게 하신 이 축복을

다른 이에게도 전하고 싶은 마음에 지나간 글을 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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