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꽃편지

rosary 2008. 4. 8. 20:48

 

 

어머니,       

놀이터 마당에 아름드리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커다란 꽃송이들을 눈 아프게 가득 이고서 봄 몇날 절정을            

살고 있는 나무들입니다.       

그 하얀 꽃자락 흩날리면, 굽이진 산바탈 꺾어 오르던 꽃상여        

떠오르고,동구 밖 흐드러지는 울음 속에 어머니,

당신의 치마폭과 함께 긴 세월 건너  내 맘도 젖어들어 갑니다.        

그토록  아린 시절을 살던 어머니.        

당신은 지금 이 봄에 꽃을 보며 무얼 생각하십니까?

 

어머니, 당신의 한 조각을 아쉬움과 섭섭함,그에 더해        

후련함으로 떼어 보내던 날.       

그날도 봄이었지요.        

아침 해 정갈히 떠오르던 동녘 하늘.        

당신의 단정한 가리마 위로 햇살 반짝일 때,당신의 기도는        

간절함으로 손끝에서 떨었지요.       

노파심과 우려 속에 오밀조밀 싸주셨던 보따리 보따리,       

그 사랑을 하나 하나 풀어서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따스한 그 손길,알록 달록 갖가지 양념통에 색스럽게 담아놓고

한밤에 잠 깨어 당신을 느낄 때,       

새벽잠을 밀치고 눈 가득 들어오는 당신을 볼 때,       

나는 부엌으로 달려가 당신을 만납니다.        

 

당신의 아린 세월만큼이나,        

당신의 정수리에 박히던 뙤약볕만큼이나        

맵고도 약찬 고춧가루,        

긴 날들 동안 익혀온 인내로

독 안에서 응축되고 진해진 간장 빛깔,       

작은 오지 항아리에 담아온 새우젓 황석어젓 냄새,       

그 모두 당신의 체취, 당신의 빛깔로        

각기 제 자리에서 날 반깁니다.       

소곤소곤,사각사각,       

제 집에서 살을 부비며 꿈꾸고 있는 양념들입니다.

 

어머니,        

마음 안으로 갈피갈피 접혀드는 당신에 대한 추억입니다.       

잔잔하고 고운 볕처럼 하도 깊숙하고 그윽한 느낌임에        

그 속에 푹 잠겨 당신을 회상합니다.        

새벽 어둠 속에서 토닥거리며 타오르는 솔가지,       

불빛에 반사된 당신의 볼 상기되어        

참으로 곱던 그때였습니다.       

늦은 저녁밥을 미처 기다리지 못하고 고부라진 어린 잠,        

안쓰러이 토닥이며 안아주던 당신의 품 어찌 그리 따뜻했는지요.        

밤으로 낮으로, 울 안으로 울 밖으로, 들로 밭으로        

그토록 바삐 사시면서도 우리들 가슴에         

늘 환한 웃음으로 앉아 계시던 당신.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당신의 무서운 노력이 있었습니다.       

실패의 연속으로 위축되었던 청소년기,        

그 한 매듭을 풀지 못하여 굴절 되었던 마음.       

미래의 전망을 잃고 그 전망을 어두움으로만 바라보며 살 때,        

당신의 고요한 미소는 아픈 매였습니다.       

따뜻하고 안온한 식탁은 더 큰 채찍이였습니다.

 

어머니!        

당신의 정서가 흘러서 이제 나는 이곳에 또 다른 식탁을 꾸밉니다.        

당신의 지난 날을 모아서 새 힘을 도출해내고 있습니다.        

당신의 과거와 내 미래가 어울려        

새 꿈과 새 생명을 키워내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사랑으로 말입니다.                                          

1994년 봄에 당신의 딸이 씁니다.              

 

 (2008년 결혼 기념일을 지내며 당신을 추억하며 옛 글을 올립니다.)

 

                                                                  

Ernesto Cortazar, Sicilian Ro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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