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제주도 생태 평화 기행

rosary 2015. 12. 30. 11:49

                   

 제주도 생태 평화 기행 

어느 날 저녁 미사 때 보좌 신부님으로부터

`제주도 강정마을에 가실 분? 선착순으로 모집하니 사무실에 접수하라`는 말씀을 들었다.

조배실에서 만난 교우의 부추김, 빨리 입금한 순서대로라는 말에

다음날 바로 입금하여 기다림 끝에 가게 된 여행이었다.

불과 며칠 전에 본당 사무실에서 공문을 보고 여행의 테마와 일정을 알게 되었던 바

교구 정의 평화 위원회에서 주최한 이름하여 `제주도 생태 평화 기행` 이란다

`제주여행!` 한때 신혼 여행지로 유명했고,

나도 그곳에서 신혼의 꿈을 꾸었으며 희망을 말하며 살아온 지 어느덧 한 세대가 지나간다.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는 가운데 베낭을 메고,

누가 올까 하는 기대감 속에 자못 설레는 맘으로 교구청엘 들어섰다.

한참을 기다려 하나 둘 모인 인원이 신부님 네 분, 수녀님 한 분, 교구청 직원 둘, 그리고 우리 평신도 다섯,

모두 12명이다. 으레껏 어떤 모임이나 12 아니면 11, 13명이 모이기 일쑤다.

버릇처럼 예수님의 제자들 수라고 굳이 끼워 맞추기 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작은 체구의 여자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알록달록한 털 모자를 쓰고 있어 꼭 네팔인처럼 보였다.

늦은 점심을 먹고 한참을 달려 제주 4.3 평화 공원에 닿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평화`라는 단어가 주는 억압과 부자유의 반대개념을 떠올리며

이 곳 저 곳을 구경(?)하게 된다.

비가 내리는 탓인지 방문객이 거의 없고 우리 일행만 있는 형편인데 기념관에 들러 전시물과 영상을 보며 4.3사건의 도화선이 된 역사적 사건들을 설명 듣는 과정 내내 무거운 돌덩이에 눌린 듯한 답답한 맘이 들었다.

45년 일제 패망에 따른 해방과 제주인의 자치열기, 도화선이 된 473.1발포사건과 단독 선거(5.10) 반대로 일어난 4.3 무장봉기는 제주 저항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고, 진압을 피해 굴속에 들어가 참혹하게 살았던 모습은 92년 발견된 다랑쉬굴의 재현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되었다. 일제 시대에 겪어야 했던 제주민들의 비극과 고통, 우리나라 정부 수립과정의 아픈 역사현장의 한 곳이 바로 여기 우리나라 남단 끝 제주 섬이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육지에서 뚝 떨어져 있는 고립무원의 한 섬의 자치적 대응이 얼마나 본능적이고 처절한 몸부림이었는지 잘 느낄 수 있었다. 제주인의 후예인 여성해설자의 잔잔하지만 애틋한 해설은 우리의 숨겨진 감성을 건드리며 역사의식을 잠깨게 하기에 충분했다.

위령관에 들러 함께 기도하고 수없이 묘비만 가득한 곳을 돌아보고 내려오는 길, 안개인지 비인지 가득한 무연의 언덕길을 내려오며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을 뒤로 하고 저녁식사를 마치고

서귀포의 새섬을 산책하며 첫날 여행을 마무리한 뒤

강정 평화 프란치스코 센터에 닿아 문정현 신부님과 인사하고 하루를 마감했다.

여행 둘째 날, 해군기지 공사현장 정문 앞에서 매일 아침 7시에 백배를 한다며 간밤에 일러준 대로 방짝과 함께 한참을 걸어 나가니 활동가들 몇 분이 준비하고 있었다.

일 배 일 배 의미를 담아 확성기에 나오는 소리를 따라 절하다 보니 갑자기 가슴이 뭉클하며 눈물이 솟아오른다. 남녀노소 각양각색의 음성으로 녹음된 목소리를 통해 그동안의 삶을 반성하게 되고,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가?` 하고 자문하며 다시 신앙인으로서 자세를 되돌아보게 하여 당황스러웠다. 처음에 여행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던 내가 그동안 무관심했던 우리 나라의 아픈 현장, 국토의 남단에서 모든 상처를 용서 청하며 하느님과 세상을 향해 엎드려 절하는 내 모습을 객관적인 눈으로 위에서 내려다 보게 되었다. 아침 식사후 강정마을 해안가로 나가 공사 중인 해군기지를 둘러 보았다. 강정마을은 제주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며 산호 군락지로서 천연의 보고라 한다.

특히 1.2km의 한 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구럼비 바위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에 충분하다 하는데 그 위에 강대국의 야심이 뒤덮이고 있는 현장을 바라보자니 무력한 우리 나라의 정치적 현실에 분노가 일었다. 그렇게 많이 진척된 공사를 목격하고 또 차편으로 이동하여 공사 현장의 담벽을 끼고 둘레길의 아름다운 물길을 따라 내려가니 곧 바다로 이어진다. 여기저기 화산석의 바위안에 제주역사에 숨은 이야기들이 잘박잘박 물속에 담겨져 있다. 선물로 주어진 아름다운 자연, 아쉬움과 안타까운 우리의 탄성, 그냥 아픔이라고만 말할 수 있는 우리의 견학(?)은 미사로서 절정을 이루게 되었다.

아침에 백배를 올렸던 곳에서 매일 11시에 미사가 집전된다 한다.

방송에서 더러 보았던 장면의 현장에 우리는 앉았다. 미사 중간에 의자 채 우리를 번쩍 들어 옮겨 놓는 경찰들, 그들은 무슨 죄인가.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그렇게 세 번 네 번 의자와 함께 들려나간다. 그래도 공사는 이루어지는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하고 많은 이들이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잘못된 권력의 남용을 바로잡기 위해 하느님을 의식하고 사는 우리 신앙인의 의지를 전달하는 것은 당연한 몫이라 생각된다. 그렇게 가장 엄숙하고 경건한, 현장에서의 미사를 하고 산방산쪽으로 나가 둘러본 해안가, 한참을 걷다보니 건너편 절벽 밑으로 작은 구멍들이 보이는데 인간 어뢰들이 숨어 있던 기지라 한다. 또 작은 산 전체를 관통하는 땅굴을 들어서보니 칠흑같은 어둠이 공포스러웠을 당시 병사들의 마음을 전달해준다. 또 알뜨르 비행장의 격납고들을 보고 탄약창의 폭발 현장을 들렀다. 얼마전 탄약대대에서 군복무중인 아들의 부대 개방에서 보았던 그 탄약고들이 떠올라 감회가 각별하였다,

무명의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인간의 무자비함과 잔인함의 끝은 어디인가 다시 생각해 본다. 그렇게 상처투성이의 섬을 둘러보고 포구 쪽 해안 둘레길을 걸으며 작은 들꽃과 억새풀 부딪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바위와 파도의 포말들을 보며 마음을 씻어낸 뒤 김 대건 신부님의 표착기념관과 성당을 방문하였다. 당시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님과 함께 거친 파도를 헤치며 이곳에 도착했음을 기념하는 성전이기에 지금까지의 여행길에서 느낀 먹먹함을 많이 치유받는 듯 하였다. 저녁시간, 각자의 느낌을 말하면서 여행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또 아침이 왔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새벽 백배를 마치고 또 길 위에서의 미사를 하고 우리는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라는 채플린의 말이 있다. 그렇게 아름다운 제주 섬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비극의 현장이었음을 알았으며 지금도 국제적 야망의 근거지가 되고 있는 땅이기에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 모두가 새로운 인식을 지니고 정말 잘 살아야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