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예술과 idol의 경계를 넘어선 기쁨

rosary 2022. 3. 25. 16:09

벌써 사순 3주간도 거의 다 지나간다.

열심히 기도와 단식과 자선을 행하고 지내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익히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전달하고 지키려 해왔던 지난 신앙여정을 돌아보자니 올 사순은 조금 특별하게 지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지난 겨울부터 한 오디션 프로에서 만난 가수로 하여 내 일상이 조금은 달라져서 약간 혼란스러워 당황하던 중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기도와 그날의 복음 말씀을 묵상하여 친구들에게 전달하던 습관이 어느때부터인지 

먼저 폰을 들고 팬카페를 들여다보며 새소식을 찾고 한밤에도 그 가수의 홈페이지 속에서 그의 내면 알기에 급급하고

이곳 저곳 유트브와 인스타를 전전하니 기도는 저 나중으로 밀려나고 그런 상태에서 사순을 지내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동안 직장의 퇴직과 맞닿아서 시간이 많고 또 마음이 헛헛해서 그런가 하고 짚어보면 그도 아니다.

또 코로나로 인해 신앙생활에 나태가 끼어서 그럴까 하면 매일 성당에 나가 미사와 조배 등 여타의 활등은 그대로 하고,

평의회 활동도 부족하지만 나름 출석을 하고 각반 양성들을 격려하고 살피기도 한다.

그런데 왜 나는 당황하고 힘든 느낌을 받았을까.

그것은 내안에 어떤 신앙의 틀을 편협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동안 나는 그와 석달 열흘을 함께 해왔나 보다.

그의 노래를 듣고 그의 그림을 보고 그의 감성을 느끼고 그의 인식을 함께 인식하며 지내왔다.

그의 가치관을 노래의 가사에서, 여기저기 적어놓은 글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의 세상에 대한 시각을 따라 눈길 주다보니 나와 시선이 마주치는 지점이 많았으며

그의 사람에 대한 애정을 함께 나누다보니 내 손길과 맞닿는 부분이 있어서 따뜻하고 참 좋았다.

어느 누구라도 소외되어 울고 아파하지 않는 세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가 울고 있음을 알아서  당연히 그를 위로해 주어야 한다.

모르는 척, 눈감고 귀막고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래서 세상에 예언자 직분으로 불의에 저항하고 분개하며,

왕직을 통하여  아픈이들을 섬기고 봉사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을진대

나는 그의 비폭력의 따뜻한 저항이 고맙고 인내의 섬김이 너무 감사함을 느낀다.

 

어제는 새벽미사를 마치고 사순 고백 성사를 보았다.

몇일동안 성사 준비하며 성찰하며 살펴본 바를  조목조목 적어보니

하느님 사랑에서 나는 기도를 어떻게 하며 사랑하고 지냈는가,

이웃사랑에서 나는 자선과 단식을 어찌해왔는지 누구를 섬겨왔는지 눈에 잘 들어왔다.

하느님 사랑면에서 그 가수로 인해 내 맘안에 하느님의 자리가 멀어졌나 하니 아니란 생각이다.

물론 시간적으로는 영적독서의 분량이 줄었으며 기도시간도 적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의 노래를 통해 더 마음이 말랑말랑해져 따뜻한 하느님을 느끼고 쉬 회개에 이르렀으며,

하느님, 그 연민의 마음이 더 실감되어 나는 참 많이 울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느끼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느끼게 해주려고 여기 저기 공유의 민페를 끼치며 지냈다.

이제 나는 안다.

그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말하는 idol같은 우상이 아니라

내게 예술의 지평을 넓혀서 더욱 아름다운 신앙인이 되게 해 주었음을~

그동안 내가 만든 편협한 하느님의 마음으로 불편했던 시간을 훌훌 털어내고 

쭈뼛거리며 지나온 100일간의 내 팬심을 당당하게 드러내며 

내일 광주콘서트장으로 향하리라는 새로운 각오로 지금의 이 설레임을 기록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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