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정표의 섭리(세라피나 수녀님과의 만남)

rosary 2022. 4. 5. 17:08

벌써 일주일 전, 지난 주 화요일 3월 29일의 이야기이다.

아침 기도를 끝내고 친구들과 그날 기도와 말씀을 주고 받은 뒤 갑자기 초남이 성지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 친구는 멀리 사는 관계로 가까이 있는 친구와 약속을 잡아 성지에서 십자가의 길과 미사를 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와 윤지헌 프란치스코 유해가 안치된 무덤 경당에서 

참배하는 신자들 안내 봉사를 마친 뒤에 점심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성지를 나오게 됐다.

농로를 따라 나 있어 좁은 길인데다 교통편이 좋지 않은 성지 외곽에 수녀님 두분이서 한쪽 갓길로 비켜서는데

꼭 우리 본당에 계시던 수녀님 모습과 흡사해서 차를 세우고 수녀님 이름을 부르니 아니라 하신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분간이 안돼 잘 못 알아본 것이다.

그래서 출발 하려던 참에 오가는 차량도 없고 나가는 일이 난감하실 터 멈칫멈칫 하는 눈치가 보여

어디까지 가시냐니까 시내 택시 탈 데까지 데려다 달라 하신다.

친구와 나는 점심을 먹으려던 계획이었는데 그렇게 해서 동승하게 되었다.

한 수녀님은 다행이다 싶었는지 누군가와 통화를 하시며

그냥 택시타고 전주역에 가겠다며, 길이 어긋날 것 같으니 나오지 말라 한다.

그래서 그럼 우리가 역에 모셔다 드리겠노라 말하고 성지에 관한 이야기로 이말 저말 나누고 가던 길에 

한참을 가서 `초포` 라는 이정표를 보더니, "아 초포 오랜만이네" 하신다.

그래서 초포를 아시느냐, 이쪽이 고향이시냐 하니 그렇다 한다.

우리는 그때까지 타지에서 순례오신 수녀님들이려니 했는데~

그러면 어디에서 사셨느냐 하니 전동에 사셨다 한다.

그 말끝에 우리도 전동성당 옆에 성심학교 다녔다 하니 두분 다 자기들도 성심 출신이시란다.

그렇게 해서 학교때 담임 선생님들이며 이야기가 꽃이 핀다.

그래서 내가 우리의 생년을 말 하니 내내 얌전하시던 수녀님이 당신도 그렇다 한다.

그 말끝에 놀란 내가 수녀된 한 친구 이름을 크게 외치니 그 친구는 인보성체 수도회고

자기는 박 oo이라 한다. 아 이를 어쩌나!

나도 모르게 내 이름을 말하면서 "나는 oo야"  하고 외쳤다.

그 친구는 몇학년 때인지는 확실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한반 친구로 친하게 지냈던 터다.

그렇게 서로 놀라는 중에 어느 사이 전주역에 닿았고 줄줄이 이어지는 차량 때문에 

내려줄 수 밖에 없었다. 급히 전화번호를 물으니 캄보디아 폰이라며 내 번호를 물어 알려주고 

손 한번 잡아보고 헤어지고 말았다. 그 아쉬움이라니~~

친구와 점심을 먹고 집에 와 곰곰 짚어보니 고등 2학년때 같은 반이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수녀 친구는 세라피나라는 이름으로 익산을 지나고 있다고 카톡을 보내와서 친추하고

그날 이후로 여고시절 추억의 친구들을 꼽아가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정담을 쌓았다.

아무리 친구라 해도 수도자인데 처음에는 말을 놓기도, 존대하기도 좀 애매했는데 

스스럼없이 그저 친구로 대하는 안부들에 나도 그냥 다정한 친구로 대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히 그 친구가 어떤 수도회에서 어떤일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살펴본 바로 그 친구는 간호 책임자로 오랜기간 병원 사목을 하다가

지금은 캄보디아에서 특수 사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쪽 아이들의 열악한 교육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중도에 포기하고 학업을 그만두는

가난한 그곳 아이들이 너무 안타깝다며 기도를 부탁해왔다.

그렇게 며칠동안 연락을 주고 받다가 4월 1일 저녁 비행기로 떠나갔다.

가면서도 내내 기도 부탁만 했다. 그런 친구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 더 찐한 기도로서 응원중이다.

그날 헤어진 뒤로 수녀친구에게 "그 초포 이정표를 보여주신 하느님 멋쟁이" 하고 톡을 보냈더니

자신도 초포 이정표가 너무 신기하고 고맙다 한다.

이년만에 휴가를 나온다 하니, 초남이 성지에 오고 싶어서 출국 전에 순례를 온 것 같다.

아마 작년에 발견된 최초 순교 복자 유해를 참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가 그 친구에게 하느님께서 연결해 주심은 선교사업에 도움의 손길을 보태라는 뜻인가 보다며

후원을 하겠다 했더니 그저 우선은 기도만 해달라고 하며 감사에 감사를 표하며 그렇게 떠났다.

우리가 하루 하루 무심코 살면서, 말로는 주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도 기적과 같은 일을 주관하시는 분이 계신데,

우리의 어떤 하루라도 그저 무심하겠는가 하고 생각해 본다.

남들은 우연의 일치라고도 쉬 말하겠지만 그분 안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 사순의 막바지에서 체험하게 된 순간을 되생각하며 주님께 감사를 외워본다.

 

그렇게 만나서 단 며칠간의 몇몇 안부인사의 정이

40년도 더 지난 세월을 넘고도 남게 진하다는 것에 놀라는 중에 봄꽃은 흐드러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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