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무지개의 초대 (7월 30일-자매들과의 만남)

rosary 2022. 8. 1. 18:51

새벽에 가랑비가 오락가락 내리더니 낮에는 햇살이 반짝인다.

그러고 보면 하루의 시간과 일기의 변화는 한 인생 여정의 작은 보기인듯 하다.

어느날에는 빗줄기와 빛의 교차 안에서 수많은 변화가 짧은 시간에도 일어나기도 한다.

지난 토요일에는 우리 네 자매의 만남을 위해 1박2일의 일정으로 서울에 갔는데 마침 그 날이 그런 날이었다.

서울에 닿았을 때 빗방울이 하나 둘 듣다가 곧 또 맑아져 뙤약볕이 맵고 부담스럽더니 영화를 보고 

남양주에서 오후 예상보다 빠른 저녁을 먹고 나오니 빗방울이 다시 흩뿌려서는 건너 하늘위로 무지개가

쌍무지개로 우리를 환영하듯이 떠오르니 '오 하느님' 을 연발하며 우리는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만을 위해 뜬 무지개인양 우리는 그렇게 주님께 찬미를 드리며 감사해 했다.

사실 예약을 했을 때는 창가가 아니라 좀 서운하다 했는데 정한 시간보다 빨리 와 자리가 나면 들여주기로 했다는데 

4자리만 있는 아늑한 독방으로 강이 내려다보이는 창이 있어서 우리는 주님 돌보심으로 여기며 더 감사했던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무지개를 보며 우리를 축복하시는 주님을 느끼며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까!

서편으로 난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마지막 축복을 더하겠다는듯이 하늘에는 환상의 구름과 노을이

그림보다 더 아름답게 떠 있어서 우리는 연신 폰을 눌러대며 그 순간을 담기 바빴다.

그런 하루의 日氣를 지켜보자니 영낙없이 주님의 손길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인생여정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서울에 오게 된 연유는 둘째 언니가 일주전에 생일을 맞아

당신 식구들, 결혼한 자녀들과 함께 하고는

우리 자매들이 하루라도 따로 같이 하자 했는데 숙소 잡기도 어렵고 해서

얼마전에 본 영화 헤어질 결심을 내가 추천하며 영화와 식사와 하룻밤 동숙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자매들 셋은 서울에 살고 나만 고향 가까이 전주에 살기에 일이 있으면 내가 올라가는게 수월해서 그리 되었다.

 

 

 

우리의 형제는 2남 5녀로 어쩌면 다복하다 하겠는데 그중 맏이인

큰 오빠와 큰 언니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이미 우리 곁을 떠나고 안계신다.

 

 

 

큰 오빠는 당시 내무부 예산 기획관리실에 근무하며 부모님의 자랑이었는데

국회 예산 심사때에는 밤샘을 하다시피 하던 일이 너무 무리였는지

60도 안된 나이에 심장마비로 하루 저녁에 그만 순직하고 말았다.

그 후로 친정 부모님은 당신들의 기둥을 잃고 속에 골병이 들어서

5년 사이로 세상을 등지시고 친정 가까이에 사는 큰언니가 엄마처럼

고향에서 우리를 맞아주며 엄마역을 했었다.

우리와 나이 차가 많은 탓이기도 하지만 워낙 성품이 곱고 다정하여서

정말 엄마처럼 우릴 품어주던 그 언니가 머리를 다쳐 오래 고생하다가

돌아가신 후로는 자연히 친정쪽에는 발길이 뜸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북적거리던 집을 비워두고 대문을 걸어두니 울안에 잡풀만 올라오고 갈때마다 속이 상했는데

지금의 고향집에는 아들로서는 둘째요 형제로서는 네째인 작은 오빠가 일산에서 퇴직후 귀향해 와 있다.

그래도 부모님 살아계시던 때와는 달리 왠지 구심점을 잃은 것처럼 제사때나 명절때나 가게 된다.

자연히 이제 서울에 사는 둘째언니가 맏이역을 하게 되어서 무슨 일이 있으면 그곳을 찾게 되니

어느 때에는 사실 미안해지기도 한다.

 

지금의 그 언니는 6,25둥이로 어려서부터 야무졌던 모양이다.

돌아가신 큰 오빠와 큰언니로부터 한창 터울이 지는데 그 사이에 난 아기들이 어려서 잘못되어서라고 한다.

사실 우리가 아주 어려서 맏이들은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크면서도 둘째 언니가 맏이같은 느낌이었다.

우리 집은 대농가로 부모님이 논으로 밭으로 일 속에서 늘 바쁜 탓에 저절로 자란 느낌으로

어머니 아버지 보다 눈에 보이는 보살핌은 언니에게서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때는 동네의 학교였기 때문에 부모님도 오셨던 기억이지만 

읍내의 중학교, 도 소재지의 여고, 서울에서의 대학 졸업식에는 모두 언니들이 왔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에는 바로 위의 언니와 자취를 했었는데 둘째 언니가 당시 교사생활을 하며

우리 자취집을 늘 들락이며 보호자 역할을 했었다. 결혼 후에는 신앙생활안에 열심한 모습으로 봉사하며

지역에서 수필집도 내가면서 여러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기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와 같이 자취생활을 했던 바로 위의 언니는 매일 내 도시락을 싸주며 기차 통학의 불편한 대학생활을 하며 고생했다.

당시에는 당연한 걸로 알고 지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한창 놀고 싶고 밖에 나돌고 싶을 나이에 그랬다는게 참 고맙다.

그 언니는 초등 시절부터 부모곁을 일찍 떠나 유학생활을 하여 항상 맘안에 애정결핍의 어려움이 있는데도

그를 잘 극복하며 둘째언니를 따라 교사의 길을 걷다가 지금은 서예와 한국화가로 꾸준히 전시회도 여러차례하며

예술가로서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다. 지난번에는 언니 전시회로 하여 강화도 여행을 하기도 했다.

화려한 작가 생활을 잘 하고 지내는 것으로 알고 때로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연전의 제주 여행에서 어린 시절의 아픔을 이야기 하며 어려운 속내를 말할 때 눈물이 나고 안스러웠다.  

 

또 내 아래로는 부모님이 쉰을 앞두고 낳은 늦둥이 여동생이 있는데 나하고 무려 여섯살이나 터울이 진다.

막내이다 보니 위로 형제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다 대처에 나가서 공부한다고 어려서는 혼자 크듯이 했다.

풍족한 집안 사정에 별 걱정 없었다해도 동갑내기 조카들 속에 어찌보면 외롭게 자란 느낌인데 늘 미안한 맘이 든다.

하지만 그 동생이 잘 자라 영어강사를 하다가 결혼해서 제 아이들을 잘 건사하며 신앙생활을 아주 잘하고 있다.

성당 교리 봉사,무료급식 봉사 등을 오랜기간 하다가 공부를 열심히 하여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더니

지금은 서울시청, 여러 구청 등에서 직업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기만 하다.

이렇게 남은 우리 네 자매는 매달 얼마씩 기금을 모아서 여행도 다니고 순례도 다니기로 했다.

이번에도 숙소 잡기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행히 집을 떠나 혼자 생활하는 조카의 집을 빌려

우리 네 자매가 한 공간에서 똑같은 잠옷을 입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하룻밤을 보냈다.

이튿날 다같이 성지 미사를 하자고 의견을 모아 남양주 마재 성지에서 주일 미사를 하였다.

다산 정약용의 고향이기도 한 마재성지는 한옥 성당으로 아담하고 예쁜 성당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사참례하는 모습을 보니 성지를 찾아오는 발길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미사후에 신부님과 인사하며 네 자매라 하니 반갑게 사진찍기에 응해주셨다.

 

빗방울이 하나둘 시작하여 서둘러 정약용 유적지를 돌아보며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점심 먹을 식당을 찾아서 강변 식당에서 매운탕을 먹었다.

그러고 보면 한강은 서울시민과 경기도민들에게는 보배의 생명젖줄인 느낌이 든다.

사람들의 본성은 누구나 자연을 좋아하지만 그 자연의 소중함을 알면서도 편리함에 먼저 기울어져

눈으로 즐기는데에만 족하고 가꾸고 보존하는데에는 소홀히 하여

이 젖줄인 한강이 얼마나 몸살을 앓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금방 심각해진다.

전라도음식에 비길까마는 자매들이 함께이기에 맜있는 점심을 먹고 워커힐 찻집을 찾았지만

웨이팅 시간이 너무 길고 빗줄기도 심하여 내려와서 언덕길의 피아트라는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었다.

창밖에 우거진 나무 아래로 내리는 빗줄기가 이야기 나누는데 멋진 무대 배경이 된 느낌이다.

 

그렇게 긴 시간을 함께 보내고 동생네 집 앞까지 갔으나 코로나의 조카때문에 들어가지는 않고

우릴 주려고 만들어 놓았다는 약식을 한팩씩 싸주어서 들고 서초동 언니 동네에 들어섰는데

집에 들고 나고 하는게 번거로워 말리는 언니를 이기고 예매한 표를 굳이 바꾸어서 전주로 돌아왔다.

서운해하는 맘은 이해하지만 오히려 언니집에 들어갔다 나오려면 그게 더 서운하니 역에 닿았을 때 내려왔던 것이다.

빗길에 운전하느라 애쓴 세째언니와 총무를 맡아 늘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언니들을 돌보는 막내도 고맙기만 하다.

그 이틀동안의 정은 그간 60년을 쌓아온 정 못지 않게 진득하고 아깝고 고마웠다.

무엇보다 다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며 잘 살아가는 우리 자매들을 보며 기꺼워 하셨을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앞으로의 삶도 건강한 영혼과 육신으로 기쁘게 살아간다면 더이상 바랄것이 없겠다.

이제 우리 아이들이 신앙유산을 잘 지켜나가고 그  신앙안에서 또 제 자녀들을 키워주어 주님안에 반듯하길 바랄 뿐이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느님,

당신 아들 예수님안에서 저희 자매들을 통하여 세세 영원히 영광과 찬미와 흠숭을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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