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흐리다.
그렇게도 반짝이던 가을 햇살은 가려지고 어둑한 하늘은 맘조차 가라앉게 한다.
어제의 긴 하루의 여파인지 녹초처럼 깊은 잠으로 오전을 보냈다.
새벽미사에서 연중의 마지막 시기를 말하듯
묵시록에서는 그동안 잘 해왔지만 한가지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렸다며
네가 어디에서부터 추락했는지 생각해내어 처음 하던 일을 다시 하라며
나무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어제의 일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도 밖으로 맘이 돌아서 생각과 시간과 물질을 나만을 위해 소비하면서
불면의 밤으로 살았던 근 일년의 세월이다.
겉으로야 변함없이 똑같은 일상을 살았지만 맘으로 많이 불편헸던 날들이다.
때 맞추어 지난 1월에 퇴직이 맞물려서 시간적으로 자유로워서였는지도 모른다.
책을 방패삼아 무료함을 달래면서도 영적독서의 시간은 줄어들었으며
깊은 묵상과 내적 성찰보다는 그저 매일 미사와 습관적 기도로 만족하던 시간들이었다.
남보기에는 항상 똑같은 활동과 봉사의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조금씩 해이해져 가는 내 이중적인 모습에 맘이 불편하였던게 사실이다.
그렇게 일탈의 시간을 보내면서 일상이 달라져가고 점점 매몰되어가는 중에
나만이 느끼는 죄감을 방어하면서 억지를 쓰고 지냈던 것 같다.
그저 취미에 그쳐야 했을 노래 문화를 새로운 사람들과 공감으로
아니야 괜찮아 하며 나는 모르는 새에 중독의 일상으로 갔으니
너무 쉽게 빠져든 마약같은 문화속의 달콤함을 이제 끊어내라는 듯 하다.
그래서 주님은 요나처럼 발뺌하고 도망치려는 내 맘을 더 잘 아시고
내 뒷덜미를 잡아채고 어제 형제회 선거에서 봉사자로 묶어놓으신 것이리라.
나는 많은 형제들 앞에서 아이처럼 떼를 쓰고 눈물을 뿜으며 하소연 해보아도
그분의 계획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몇시간이나 지났을까,
지루한 투표로 형제회원들을 힘들게 하며 9직책의 평의원들을 뽑고
지구 봉사자 앞에 나가서 받아들이겠노라고 머뭇거림의 수락을 하게 되고
미사를 하고 영보와 지구 평의원들의 안수를 받고
모든 회원들과의 악수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지구 식구들과 전평의원, 새평의원들의 저녁식사를 끝내고
길고 긴 하루를 마감하게 되며
나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어려움속에 삼년을 보낼까 싶었지만
성령께 모든 걸 의탁하며 밀려드는 겁을 몰아냈다.
서툴고 부족한 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속엣말을 다지면서~
그동안 지난 시간동안 내게 위로를 주었던 유스티노님도
삼위의 보호자께 노래로 기도를 봉헌할 것임을 믿으면서
변함없이 의리안에서 그를 위해 나도 기도하며
이제는 건강한 일상속에 끈적이지 않는 쿨한 팬의 자리를 지킬 것이다.